그는 책 ‘희망의 밥상(Harvest for Hope)’을 펴내고 유기농 음식 먹기, 고향 전통 음식 먹기를 설파하고 다닌다. 이 책에서 그는 대량생산을 위해 숲을 밀어내고 농경지로 만드는 대기업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다. 한결같이 고운 때깔로 슈퍼마켓에 진열된 과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화학 비료가 사용됐을지 상상해 보라고 그는 주문한다.
‘희망의 밥상’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3일 구달 박사를 영국 본머스의 자택에서 만났다.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이곳에서 구달 박사는 동물 연구의 꿈을 키웠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대기업들이 우리의 먹을거리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남기려면 화학 비료를 많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은 물론 우리 건강도 해치는 거지요.”
구달 박사는 유기농 제품을 애용하라고 조언했다. 대량생산 제품보다 비싸지만 건강을 해치고 나서 들어갈 의료비를 감안하면 결국은 싼 편이라는 주장이다. 또 몇 푼 더 써서 아이들이 건강해지고 자연을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 비용은 아깝지 않다는 것. 유기농 제품을 생산하는 소규모 농장과 이를 판매하는 작은 가게들이 대기업, 대형 슈퍼마켓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소비자의 지원이 절대적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구달 박사는 마치 구호를 외치듯 “소비자 개개인의 생각과 태도가 변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먹을거리 전도와 더불어 구달 박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환경 운동의 장으로 이끄는 것. 제인 구달 연구소가 1991년 시작한 청소년 중심의 환경 보호 운동 ‘루츠 앤드 슈츠(Roots and Shoots·뿌리와 새싹)’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구달 박사는 “남은 인생의 목표는 어린이, 젊은이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꿈을 잃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TV에, 컴퓨터에 매몰돼 단조로운 일상을 되풀이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겁니다. ‘루츠 앤드 슈츠’는 그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는 운동입니다.”
거리 청소와 하천 복원, 물고기 방류에 동참함으로써 ‘나 자신이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주는 것.
인터뷰 도중 거실 한쪽 탁자에 한글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침판지와 함께 한 나의 생애’라는 책이었다. 책 디자인이나 지질이 어쩐지 거칠어 보였는데 북한에서 나온 책이었다.
‘저자 제인 구돌, 역자 리강진, 인쇄소 민주조선사 인쇄 공장, 발행 주체94(2005)년 11월….’
구달 박사는 2004년에 이어 지난해 12월에도 북한을 다녀왔다.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는 “이틀간 평양에 머물면서 학교를 방문하고 사람들을 만났다”면서 “2004년에는 평양의 동물원을 방문했지만 지난해에는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 “사람도 먹을 게 없는데 동물은 오죽하겠느냐”면서 “침팬지를 비롯한 동물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게 가슴 아파서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평양에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확인한 것.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추진하는 쪽의 의지는 강하다고 구달 박사는 전했다. 제인 구달 연구소는 평양 사람들에게 ‘도시 영농’을 가르칠 계획이다.
구달 박사는 1년에 300일가량을 외국에서 생활한다. 두툼한 비행기표 한 묶음을 들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정신없이 다닌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 일정이 그렇게 빡빡한데도 체력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목소리에는 젊은이 못지않은 힘이 실려 있었다.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구달 박사는 급히 거실을 나가더니 인형을 안고 돌아왔다. 바나나를 손에 쥔 침팬지 인형이었다. 이름은 ‘미스터 에이치(H)’. 자신의 마스코트라고 한다.
“함께 54개국을 다닌 내 동료이자 분신”이라면서 인형을 꼭 끌어안는 구달 박사의 모습에서는 어린이의 순수함이 엿보였다. 이런 순수함이 젊음의 비결일까.
본머스=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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