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호의 끝자락이 깊숙이 파고든 화악산 줄기 아래에서 평소 꿈꾸던 대로 토담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며 사는 친구가 늦은 밤 걸어온 전화에 이끌려 이튿날 얼음 덮인 골짜기 길을 더듬어 찾아갔다.
이름 그대로 섭씨 10도 이하의 찬물에서만 사는 빙어(氷魚). 그랬다. 갓 잡아 올린 빙어에게선 풋풋한 오이 냄새가 감돌았다. 옛사람들이 빙어를 ‘과어(瓜魚)’라고 부른 연유를 알 만하다.
얼어붙은 호수는 어디나 낚시터였다. 20∼30cm 두께의 얼음을 깨고 지름이 한 뼘쯤 되게 구멍을 뚫어 짧은 낚싯줄을 드리우기만 하면 된다. 낚아 올린 빙어는 얼음 구멍 옆에 사발만 하게 얼음 웅덩이를 파고 그 속에 풀어 놓는다. 웅덩이 안에서 꼬물거리는 고만고만한 은백색 물고기들. 어른 중지나 됨 직한 가녀린 몸집이다.
알고 보면 호수의 빙어들은 가련하다. 인간에 의해 바뀐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옹색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빙어는 본래 호수에 머물러 사는 물고기가 아니었다. 강과 바다를 오가며 생활하던 활기찬 회유성 어류였다. 주로 강 하구에서 생활하다 3, 4월 산란철이 되면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냉수가 흐르는 계곡 어귀나 호수 바닥을 찾아서.
이처럼 큰 행동반경과 현재의 작고 여린 빙어의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백과사전에 빙어의 몸길이가 15cm 정도라고 나와 있다. 이것을 보면 본래는 적어도 지금의 두 배는 됐음을 알 수 있다. 빙어가 특산물인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에선 20cm짜리도 잡힌다.
빙어는 ‘바다빙어목 바다빙엇과’에 속한다. 분포 지역은 알류샨 열도와 알래스카, 사할린과 홋카이도 등 북쪽 바다에 걸쳐 있다. 보름달이 떴을 때 일시에 몰려 나와 마치 축제를 벌이듯 떼 지어 움직이는 것은 망월(望月) 아래 함께 어울려 강물을 역류해 역영(力泳)하던 때의 기억 때문이리라.
빙어가 왜소해지기 시작한 것은 댐에 갇히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갇혀 살 수밖에 없게 된 빙어들은 점점 작아졌다. 활동 공간이 제한되자 힘도 줄어들고 연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다를 넘나들고 거센 강 물살을 헤치던 호연지기도 잃어버리게 됐다. 더욱이 인공부화를 통해 대량 방류가 되고부터는 종자의 다양성마저 사라져 빙어는 갈수록 왜소하고 획일적으로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바다의 꿈을 빼앗기고 호수에 갇혀 사는 ‘민물’ 빙어들. ‘호수의 요정’이라는 환상적인 별명을 선사받기도 했지만 빙어에게는 오히려 모욕이 될지 모르겠다. 빙어는 하루빨리 호수를 벗어나 바다로 가고 싶고 강과 바다를 오가며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싶을 테니까.
입춘이 지났다. 이제 곧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가 동지 무렵이 돼서야 다시 나타날 저 오이 맛을 지닌 작은 물고기들. 꿈속에서라도 바다를 보기 위해 깊은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 깊이 잠드는 게 아닐까?
이덕림 ‘춘천학공부모임’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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