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라면 (위 본문 발췌문에 묘사된 것 같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음악을 좀 들었기로서니 뭐 그게 사치인가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 시절이니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디 마당만인가. 그 남자네 집에는 ‘당시에 드문 전축이 있고 빼곡하게 꽂은 음반이 두 벽 천장까지 닿아’ 있기조차 하다. 눈앞에서 포탄이 터지는 세상에서 ‘음반을 조심조심 마치 애무하듯이 다루는’ 남자를 첫사랑으로 가진 여자의 마음은 참으로 아슬아슬하다. 그 아슬아슬함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싶은 마음이 가독성을 높인다.
그러나 ‘음반을 어루만지고 싶어서 그러는지, 먼지를 닦으려고 그러는지, 분간이 안 되는 그의 골똘하고도 탐미적인 손놀림’과 ‘내가 이름을 알 리 없는 외국 테너의 기름진 미성도 애무하듯이 가만가만 관능적인 허밍을 넣으면서’ 듣는 그 남자를 사랑하는 일만 소설 안에 존재했다면 그처럼 가독성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 포악한 시절에 섬광처럼 존재했던 사랑의 순간은 아주 짧다. 홍예문 안쪽의 꽃과 바람, 음악과 함께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의 아슬아슬한 관능의 시간은 아주 짧아서 사치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남자가 여자를 두고 표현했던 ‘구슬’ 같은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짧은 사치 뒤로 전쟁으로 삶이 으깨어져 버린 여자들의 삶이 허기진 채로 길고 누추하게 끈질기게 펼쳐진다. 그래서 그 시대를 겪어 본 사람들은 세월 저편으로 사라진 듯했던 그때의 정경과 눈물겹게 조우하며 감탄사를 내뿜는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잊지 않았을까 하며.
여자가 그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만들어 내는 음식에서도 한사코 눈을 뗄 수가 없다. 그 사이사이로 펼쳐진 여자의 냉정한 속셈들은 연애하는 사람들 마음을 찢어 놓는다. 그 남자와의 사랑의 순간들을 플라토닉이 아니라 사실은 임신에의 공포였다고 정의해 버리고, 은밀한 추억으로 밀어 놓을 수 있는 아련한 순간들도 자, 그건 이러이러한 것이라며 주판알로 셈을 하듯 하나하나 따져 아프게 까뒤집어 놓을 때면 저항하며 이끌려 가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종내는 깊은 한숨과 함께 여자편이 되어 있게 된다.
나를 ‘구슬’ 같다고 해 줬던 첫사랑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를 어느덧 이해하고 있는 독자는 쓸쓸하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인 것을.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그 남자네 집’은 안내할 것이다.
첫사랑은 결국 그렇게 빛나는 사치의 한순간을 남겨 놓은 채 현실에 묻혀지고 시간에 지워지며 모래알로 흩어졌다. 그랬으므로 우리들 독자는 오랜 세월 후에 그 첫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여자와 남자가 다시 만나지 말기를 바랐으나, 끝끝내 장님이 된 그 남자와 마지막 해후를 하고 포옹한 후에 여자는 우리들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못을 박는다. “우리들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고.
신경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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