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발전하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전자 기계가 많아지면서 게으른 사람들에겐 골치 아픈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새로운 전자 물품을 구입했을 때, 매뉴얼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MP3가 되는 휴대전화, 자동 예약 녹화가 되는 비디오 플레이어,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자막이 제공되는 DVD. 만약 두꺼운 매뉴얼에 질린 나머지 자신이 알고 있는 활용법 안에서만 그 기기를 사용한다면, 펜티엄4가 장착된 첨단 컴퓨터도 전동 타자기로밖에는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실용연애전서’라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두 권의 책은 연애라는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한 일종의 매뉴얼이다.
사람의 만남은 운명적이어야 한다는 종교적 애정론자를 제외한다면, 이 책은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연애 선수’를 위한 필독서다. 남녀 종의 차이를 분석하는 인류학 교과서나 선수들의 성공담을 늘어놓은 주관적 자서전이 아니다. 자동차를 몰고 거리로 나서기 위해 꼭 한 번은 들여다보아야 할 운전면허시험 문제집 같은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은 연애를 따뜻하게, 혹은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을 자제한 채 발생 가능한 최대한의 상황을 끌어내 객관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 상황의 사례는 당연히도 책의 두께만큼이나 풍부하게 담겨 있다. 저인망 그물을 장착한 채 바다 밑바닥의 치어(稚魚)들까지 모조리 끌어 담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 남자를 선별해 골라내는 방법부터, 성공적인 데이트를 위해 자동차를 관리하는 요령, 연애의 중간 점검을 위한 체크 리스트까지 실용연애전서라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든 독자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다.
책을 읽는 도중에 이 책의 내용이 과연 검증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남자는 여자용을, 여자는 남자용을 읽길 권한다. 반대의 성에 제시된 지침들은 읽는 순간 기분이 나빠질 만큼 노골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상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심리가 들통 났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니 그 검증은 이미 스스로 안에서 끝난 셈이다.
그러나 극히 미국적 연애에 기반을 둔 이 책의 다양한 예시는 섹스를 위한 작업론으로 폄훼될 여지도 있다. 저자 중 한 명인 론 루이스가 섹스를 중심으로 학문적 연구를 해 온 인물이라는 점과 침실의 향과 성병의 증상까지 설명하는 친절함 때문이다. 그러나 섹스 역시 연애의 중요한 목적임을 분명히 한다면, 그리고 섹스가 곧 연애의 한 단계를 완성하는 부분임을 깨닫는다면 이 책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