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예고 없이 들이닥친다. 지루한 겨울 아침, 스물다섯 살의 한 남자가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기에 탑승한다. 옆자리에는 젊은 여자 승객이 앉아 있다. 3만 피트 상공을 날던 비행기가 지상에 안착했을 때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초콜릿을 싫어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상대방의 말에 초콜릿 알레르기를 감춘 채 더블초콜릿케이크를 주문하는 것, 쿠션과 신문, 전화기 따위가 어지러이 널려진 자신의 침대를 기꺼이 공개하고 그곳에서 섹스를 하는 것, 태초에 한몸이었으나 신의 실수로 분리되어 버린 잃어버린 반쪽과 마침내 조우했다고 확신하는 것. 그 아름답고 우스꽝스러우며 매혹적인 착각을, ‘사랑’이라는 단어 말고 달리 무엇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사랑의 생성과 소멸에 붙이는 한 편의 긴 주석이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순간순간을 철학적으로 낱낱이 분석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몸소 증명하는 실천 이론가다. 땅 위의 모든 연애가 그러하듯, 그것은 우아하거나 고상하기보다는 주로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세목들과 관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구두에 대한 취향!
자신의 취향과 전적으로 어긋나는 구두를 신고 나타난 애인을 보면서 남자는 “어떻게 이 여자는 이런 구두와 나를 동시에 좋아할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린다. 특별해 보이던 이 사랑이 최초의 위기를 맞는 순간이다. 그 이상한 구두를 골랐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그녀가 그녀 나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에 빠진다. 사랑과 자유주의 사이의 유서 깊은 갈등은 이렇듯 일상적이고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서조차 거듭 모방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적인 에세이는 또한 사랑을 잃은 남자의 처절한 복기(復棋)이기도 하다.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랑의 운명이다. 첫눈에 시작된 사랑은 느릿느릿 붕괴된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대다 끝나버린 사랑 앞에서 남자는 통제력을 잃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를 죽이기로 작정한다. ‘나 자신을 죽임으로써 그녀가 나한테 한 일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려고 했다.’ 그래서, 과연 그는 복수에 성공했을까? 힌트는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내가 다시 한번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그것은 세상의 모든 연인들을 애타게 하는 질문인 동시에, 전율케 하는 탄식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알랭 드 보통의 패배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답을 안다면 아무도 기꺼이 연거푸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고 그 어떤 연애소설도 쓰일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혼란스러운 감정의 근원을 파헤치기 위해 책을 들이파는 사람은 바보다. 사랑의 백만 가지 환각과 홀림에 관하여, 이제 거리로 나가 당신만의 에세이를 쓸 차례다. 자, 나가자.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것이 이 매력적인 텍스트가 선사하는 진짜 가르침이다.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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