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축구대표팀 유니폼 교체

  • 입력 2006년 3월 9일 03시 00분


《월드컵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최근 앙골라전에서 처음으로 독일 월드컵 공식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축구국가대표팀 유니폼은 2년마다 바뀌어 선수들은 월드컵과 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새 유니폼을 입고 뛴다. 이번 유니폼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유니폼에서 바뀐 것이다. 스포츠 유니폼은 기능성은 물론이고 디자인에 담긴 의미까지 고려해야 한다. 유니폼에 담긴 의미가 선수들의 자부심과 투지에 영향을 미치며 선수단의 사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유니폼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각각 다른 평가를 내린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태극문양 빠져 아쉽다▼

중세 십자군전쟁 당시 십자군의 방패가 의외로 창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방패의 색채와 형태 디자인은 전쟁의 승패 및 전사(戰士)들의 사기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무늬와 색채 등 시각적 아이콘에 따라 적군이 맥없이 말려들기도 했던 ‘방패 디자인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임진왜란 때 위압적인 용머리를 거북선에 결합해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노적가리로 적을 속인 이순신 장군의 병법도 시각심리 분야의 중요한 연구 과제다.

이번 월드컵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새 유니폼은 매운 태양초의 ‘핫 레드’ 색상을 사용한 것이나 번호에서 동그라미를 뺀 점, 서체를 디지털 분위기가 나도록 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유니폼은 콘텐츠 측면에서 매우 미흡하다. 내적 콘텐츠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형태심리학에서 검증된 지 오래다. 한국 이미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나 오브제로 속을 채워야만 진정한 콘텐츠다.

국기(國旗)에 있는 태극은 그 자체가 우주의 역동성을 담고 있어 불굴의 투지를 암시하는 시각요소로 안성맞춤이다. 음과 양의 조화를 통한 승리를 상징하고 액운도 예방하는, 민족 정서에 정확히 부합하는 일종의 부적과도 같은 것이다. 태극은 1949년 국기 제정 훨씬 이전부터 영광과 시련을 같이한 심벌이다. 이런 훌륭한 아이콘을 월드컵 유니폼에 채용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디자인 해결책이다.

상의 옆구리에 궁색하게 들어간 빗살무늬와 V자 형태의 목선이 백두산 호랑이와 한복의 디자인 콘셉트라는 설명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해석이어서 한국 이미지의 에센스로 봐주기 힘들 것 같다. 조선시대 관복의 옷깃처럼 V자형 목선과 U자형 재단선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디자인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적가리로 착시효과를 내 적을 교란시키던 이순신 장군의 위장술처럼 선수들의 스타킹은 경기장 잔디와 비슷한 녹색으로 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섬유재료의 업그레이드에 치중한 나이키 디자인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국 혼이 깃든 유니폼으로 태극전사들을 무장시키자.

‘옷이 날개’라고 하듯 태극 유니폼은 ‘투지의 갑옷’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국가 정체성 그 자체라고도 할 태극은 음양을 포괄하는 승리의 궁합이니 금상첨화인 셈이다. 태극기에서 태극 원(圓)의 한 부분을 유니폼으로 승화시켜 투혼의 ‘기(氣)’를 불어넣자.

유한태 숙명여대 교수 형태심리학

▼우리 선수 돋보여 좋다▼

유니폼은 착용자의 신분이나 역할을 나타내고 소속 집단의 철학이나 의도를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기호’의 역할을 한다. 패션 경향을 반영하는 일반 의상과는 달리 착용자의 의도나 역할을 반영하는 상징성이 강한 의복이다.

유니폼은 활동성 실용성 기능성이 좋아야 한다. 또 국제적인 경기에 참가하는 만큼 한국의 정체성이 표현되면 좋다.

새 유니폼을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선수들의 착용 경험 등을 종합해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영표 선수는 이번 유니폼이 헐렁하지 않고 약간 밀착되는 특징 때문에 운동하기에 편하다고 말했다. 90분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축구선수들에게는 약간 몸에 밀착되는 것이 활동성을 높여 몸의 움직임을 편안하게 하고, 또 상대와의 몸싸움 때 더 유리하게 한다.

설기현 선수가 “땀이 나도 유니폼이 몸에 달라붙지 않아서 좋다”고 한 것은 신소재를 개발해 낸 섬유과학의 덕택이다. ‘스피어 드라이’라는 신소재는 가볍고 얇으면서도 아주 빨리 마른다. 또 섬유 조직 내부에 돌기가 있어 옷이 몸에 달라붙지 않도록 돼 있다.

‘핫 레드’ 색상은 녹색의 그라운드와 강렬하게 대비돼 우리 선수들을 돋보이게 한다. 또 하의의 백색은 빨강 상의와 녹색 그라운드 사이에 배치돼 빨강과 녹색 모두를 산뜻하게 보이게 한다. 이러한 색채대비에 대해 박지성 선수는 “상대 선수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색 배열”이라며 전문가 같은 식견을 보여 줬다.

새로운 유니폼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점은 한국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첨단 스포츠웨어에 한복의 저고리를 활용한 점이다. V자의 목선과 가장자리의 청색 선은 저고리의 깃과 동정을 연상시켜 한국적인 정체성을 웅변하는 요소로 보인다. ‘스포츠웨어에 웬 깃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부분 때문에 착용자의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옆구리 부분에는 용맹함을 상징하는 한국 호랑이를 문양화했다고 하는데, 사선은 일반적으로 강한 시인도를 지니므로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서로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경기의 흐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요소는 티셔츠에 작게 프린트한 ‘투혼’이라는 한글 모티프이다. ‘투혼’은 우리 태극전사들이 유니폼을 착용할 때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며, 선수나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을 함축한 상징으로 인식될 것이다.

이제 유니폼 디자인에 배어 있는 정성을 음미하며, 우리도 크게 외쳐 보기를 기대한다.

“투∼혼! 대∼한민국!”

금기숙 홍익대 교수 의상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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