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시청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책을 말하다’ 프로그램에 최재천 서울대 교수가 출연해 대담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서 불쑥 이런 말이 튀어 나왔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강지원 변호사님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앞으로는 ‘양성평등시대’란 말을 넘어 ‘양성협력시대’란 말을 쓰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데는 내력이 있다. 2004년인가 EBS TV의 토크쇼 진행을 맡아 방송을 할 때였다. 그때도 주제는 역시 여성문제였을 것이다.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그의 견해에 공감해 앞으로의 양성관계는 단순한 평등이라는 권리 개념을 뛰어넘어 양성이 어떻게 협력해 나갈 것인가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즉각 동의했다. 그래서 앞으로 ‘양성협력시대’라는 말을 많이 쓰자고 합의했다. 그가 그 약속을 지켜 오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었다.
이 책 맨 마지막 쪽에도 그런 뜻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누가 특별히 키가 더 크지도 않으며 누가 앞서고 뒤서지도 않는다. 그저 나란히 곁에 서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남녀가 너무 치열한 경쟁관계가 아니라 평온한 동반관계가 되기를 바란다”고 쓰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회생물학자에게 호주제가 마음에 들 리가 없다. 그는 호주제는 전혀 자연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못한 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세포의 핵이 융합하는 과정에서는 단순히 암수의 유전자가 공평하게 절반씩 결합하지만 핵을 제외한 세포질은 암컷이 홀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온전히 암컷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생물의 계통을 밝히는 족보는 암컷, 즉 여성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 책에 기술된 이런 의견은 후에 헌법재판소에도 제출된다. 그리고 얼마 후 호주제는 폐지되었다.
저자는 이 같은 결론에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 위해 갖가지 동물 세계의 이야깃거리를 풀어 놓는다. 동물 세계의 수컷들이 암컷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교태를 부리는 이야기, 다윈의 암컷 선택 이야기, 그리고 임신 입덧 월경뿐 아니라 태교 양육 교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해 준다. 그러면서 끝까지 주장한다. ‘성은 정해져 있을지 모르나 젠더는 열려 있다’고. 그 말은 유전자결정론자나 마르크스주의 좌파생물학자의 공격을 받은 사회생물학의 입장이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 행동을 끊임없이 탐구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들리기도 한다.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세상의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너무 빨리 죽는다고. 특히 이 나라의 40, 50대 남자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파리 목숨에 가깝다고. 그래서 하루바삐 남성들은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여성과 함께하는 세상을 열어 가자고 호소한다.
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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