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남녀의 e메일 연애상담을 하다 보면 흥미로운 남녀 차이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남자는 결코 사연을 반 장 이상 써 보내지 않는 반면 여자들은 A4지 기준으로 5장은 족히 채워 놓고 나서 “이 남자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요?”라며 매듭짓는다.
그런데 정작 정답은 그녀들이 보낸 e메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대방 남자는 말 그대로 ‘전화하기 싫어서 전화를 안 한 것’뿐이고, ‘당신이 여자로 안 보여서 그냥 좋은 친구로 지내자’고 한 것뿐인데 여자들은 ‘혹시 그 뒤에 숨은 뜻이?’라고 의심한다. 이유? 그녀들 스스로가 ‘이중 언어’를 구사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언동은 곧잘 ‘단순하고 직설적인’ 남자들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독일의 유명 코미디언인 저자는 쇼핑 싸움 질투 섹스 등 총 14가지의 주제별로 남녀가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얼굴 붉히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들을 소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각 장의 끝에는 사랑하지만 나를 미치게 만드는 그녀가 내던지는 말들을 ‘번역한’ 저자의 ‘단어장’ 어록이 수록되어 있다. 여성 독자들이라면 찔리고 민망해서 웃음을 터뜨릴 것이고 남성 독자들은 “아, 그녀의 그 말이 이런 뜻이구나”라고 무릎을 칠 것이다(그리고 물론 살짝 어이없어 할 것이다).
옷장은 한번도 안 입어본 옷들로 넘쳐 나는데 “입을 옷이 없다(쇼핑 좀 다녀오게 신용카드 어서 줘봐)”고 말하고, “잠깐이면 돼(겨우 한두 시간 정도면 되거든)”로 남자의 인내심 테스트를 하는 사랑스러운 그녀들.
“살을 빼야 할까 봐(어서 이대로도 예쁘다고 얘기해 줘)”에 “그래 조금만 더 빼면 금상첨화겠네!”라고 맞장구치고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에 솔직하고 현실적인 답변을 했다가는 당신은 그녀의 유도신문에 꼼짝없이 딱 걸린 것이다.
특히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서운하게 했을 때, 그녀가 “당신은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했다면 제대로 긴장해야 한다. 그녀는 5만 년 전부터 숙성시킨 불만과 비난들을 날짜와 횟수까지 기억해 내며 봇물터진 듯 쏟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정확히 말하면 ‘반박을 위한 반박’)를 토해 내는 그녀와 밤새 씨름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여자의 언어’를 학습해 놓을 것을 남자들에게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어찌 되었든 당신이 사랑하고 갈구하는 것은 이 쓸데없이 복잡 미묘하고 다루기가 번거롭기 짝이 없는 ‘XX염색체’가 아니었더냐.
한편 이 책은 남자 필자가 쓴 것인 만큼 남자들의 솔직한 심리도 함께 담겨 있으니 어쩌면 여자인 당신이 먼저 읽고 당신을 이해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불쌍한 남자들을 구제해 주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임경선 연애 칼럼니스트 ‘연애본능’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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