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수석은 서양 속담까지 인용하면서 “결국 돈이다”고 못질했다. ‘부모를 죽인 사람은 용서할 수 있어도, 돈을 빼앗은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에서 “세금을 올리더라도 근로소득세는 상위 20%가 세금의 90%를 내기 때문에 나머지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난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내놓으면서 “종합부동산세는 98%를 위해 2%만 때리는 초정밀 유도탄”이라고 선전한 것과 뿌리가 같다.
우리 경제에 밝은 일본인 교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도 일부 남미 국가처럼 오랫동안 좌파 포퓰리즘이 득세해 결국 경제가 주저앉고 빈민이 넘치는 나라로 후퇴할 우려가 있겠는가? “나도 그 가능성을 생각해봤지만 한국이 남미형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교육 수준이 높고 자본주의 성공 경험이 몸에 배어 있지 않은가.”
그러나 뒤집기에 능한 좌파가 적어도 한번은 더 대선에서 이길 거라는 ‘자신 또는 걱정’도 만만찮다. 불안파(不安派) 가운데는 캐나다로 이민 가서 두 나라 들락거리며 좌파 정권 눈치 안 보고 살겠다는 사람도 있다.
노 대통령의 ‘20% 표적 증세론’은 좌파 대중영합주의를 압축하고 있다. 그럼 그는 80%의 진정한 친구요,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 말대로라면 20%가 80%를 먹여 살린다. 그러고도 존경받기는커녕 한낱 ‘세금 자판기’쯤으로 취급받는다. 이 20%는 돈만 빼앗은 상대를 용서할 것 같은가.
상위 20%는 누진세 구조 아래서 이미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급증하는 세금과 준조세(準租稅)를 중산층 급여생활자에게 지나치게 부과하는 것은 조세원칙에도 맞지 않는 반(反)개혁일 뿐 아니라 나머지 다수에게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내 돈을 빼앗아 간다’는 생각이 깊어지면 ‘납세자의 보복’은 시작될 것이다. 세금 많이 내는 개인과 기업은 누가 뭐래도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뛰어난 그룹이다. 갈수록 무거워지는 세금은 이들의 생산 의욕과 투자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일자리도 줄어든다. 또 이들이 공급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값이 알게 모르게 올라가 다수 국민이 분담해야 한다. 세금에 손 벌리는 사람이 늘수록 이들의 생산성도 함께 떨어져 복지병(福祉病)이 깊어진다.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외치며 연간 10조 원의 세금을 더 거둔다고 치자. 이 가운데 과연 얼마가 분배에 쓰일까. 국가의 돈 씀씀이가 민간보다 비효율적 저생산적임은 현실로도 이론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노 정부 초기에 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공무원들은 개인 돈 10만 원보다 나랏돈 1억 원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체험담을 털어놓았다.
세금으로 흘러가기 싫은 돈은 해외로 도망갈 것이다. 글로벌경제 시대에 세금으로 재분배하는 데만 치중하면 자본이든 노동이든 해외 탈출이 늘어난다. 그러면 국내 경제는 쭉정이로 변한다. 세계의 좌파 정부가 사례를 수없이 보여 줬다. 좌파 선동주의는 언제나 80%를 불행하게 만들었음이 세계적 경험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편 가르기 식’ 포퓰리즘이 이미 기업의 해외 탈출, 저성장, 청년 실업, 빈부 격차 확대 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80%에게 공짜 점심을 줄 것처럼 국민을 속이지만 누구에게도 공짜 점심은 없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3주년 무렵 “선거는 부분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국정토론회에선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 정치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정치인들에게 판판이 속는다. 정확하게 파악하자면 정치는 권력투쟁일 뿐이다. 또 정치는 똑같은 것을 주면서 마치 더 주는 것처럼 속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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