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논평/송대근]‘시드니 공짜여행’ 뇌물인가, 선물인가

  • 입력 2006년 4월 3일 16시 12분


인류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거래는 성을 파는 매춘이었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럼 두 번 째로 역사가 오래된 거래는 무엇일까요? 뇌물을 꼽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패의 역사는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얘기입니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였던 존 누넌은 1984년에 ‘뇌물의 역사’란 책을 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뇌물은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사회의 골칫거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뇌물과 선물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사실입니다. 뇌물이란 ‘직권(職權)을 이용해서 특별한 편의를 봐달라고 건네는 부정한 금품’을 말합니다. 반면에 선물은 ‘개인적인 호감이나 애정의 표시’로 전하는 겁니다.

[3분 논평]‘시드니 공짜여행’ 뇌물인가, 선물인가

사전적으로는 이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여간 까다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뇌물이라고 판단하려면 금품을 주고, 대신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대가성(代價性)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후사정으로 보아 뇌물이 분명한데도 막상 사법처리 단계에선 ‘정치자금’이나 ‘떡값’으로 둔갑해 처벌을 피한 경우를 그동안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현재 열린우리당 의원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장관 등 김대중 정부 시절의 경제정책 실세(實勢)들이 금융브로커 김재록 씨와 함께 2000년 9월 부부동반으로 호주 시드니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더앤더슨 코리아라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 부회장이었던 김 씨 측이 여행경비는 물론이고 올림픽 참관 티켓까지 제공했다고 합니다. 김 씨가 누구입니까. DJ 정부가 주도한 기업 구조조정 프로젝트를 거의 싹쓸이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정관계 로비의혹과 관련해 구속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이 씨와 강 씨는 시드니 여행 당시 공직(公職)에 몸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두 사람 다 재경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강 씨는 “당시 로비를 받을 위치가 아니었다”면서 펄쩍 뛰고 있다고 합니다. 공짜로 5박6일의 시드니 여행을 다녀온게 뇌물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형식논리로는 맞는 얘기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봅시다. 두 사람 모두 재경부 장관을 지냈고, 또 언제든지 다시 실세로 등장할 가능성이 큰 인물이었습니다. 김 씨가 두 사람을 시드니로 초청한 것은 과거 고마운 일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미래를 내다본 ‘보험가입’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내용적로는 뇌물의 성격이 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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