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백형찬]청소년 연극을 부활시켜야 한다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며칠 전 서울 남산에 있는 드라마센터에서 고교 연극을 지도하는 선생님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대화의 대부분이 푸념이었다. 10여 년 이상 교육인적자원부를 설득한 끝에 겨우 연극이 고교 교육과정에 정식으로 등장하였건만 학교나 정부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연극 발표에 책정한 연간 지원금은 고작 10만 원 정도밖에는 안 되는데, 이 돈은 연극 발표를 끝내고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씩 먹으면 다 없어지는 돈이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이 자신의 봉급을 털어 가며 연극반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와 문화관광부가 예술교육의 장기 및 단기 발전계획을 추진한 지 수년이 흘렀고, 민간 주도의 문화예술위원회가 의욕적으로 출범한 지 두 해가 되었건만 예술교육의 현장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청소년 연극제에 가 보면 객석은 언제나 비어 있다. 심사위원들과 가족들만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다. 그동안 땀 흘리며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 주고 싶은데 봐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연극의 3대 요소인 희곡 배우 관객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이다. 이렇게 청소년 연극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은 늘 냉랭하다.

일찍이 동랑 유치진 선생은 ‘극장은 교실의 연장이다’라고 하였다. 연극을 학교 교육에 접목하고자 학교극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이 땅에 처음으로 전국 중고등학교 연극대회가 열렸고 이 대회를 통해 쟁쟁한 연극인이 많이 배출되었다. 서라벌고의 이정길 씨, 양정고의 정운경 씨, 풍문여고의 손숙 씨와 김을동 씨, 명성여고의 이민자 씨, 중동고의 정동환 씨 등등.

청소년기에 있어서 연극은 전인교육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은 연극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민주주의를 배운다. 연극을 통해 교과목의 학습이 가능하고, 연극을 통해 문학 미술 음악 무용 등의 종합예술을 배울 수 있다. 또 연극은 인생의 의미를 깨닫도록 도와준다.

한 편의 연극이 막을 올릴 때까지 참여 학생들은 서로 양보하는 마음과 협동하는 정신, 올바른 언어 사용법, 바른 생각 등을 배우게 된다.

아울러 놀라운 치료 효과까지 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해 있다. 어울리는 삶이 아닌 동떨어진 삶으로 인간성이 심각할 정도로 피폐되어 있다. 나 홀로 삶에서 빠져나와 공동체 삶 속으로 들어가 서로가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연극이다.

예전에는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기관과 민간단체 등이 청소년 연극 운동을 후원하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 생명보험회사에서 주관하는 청소년연극제만이 남아 있다. 청소년 연극은 다시 부활해야 한다. 우선 관련 부처인 교육부와 문화부의 깊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술교육정책 중심에 연극이 자리 잡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연극은 모든 예술의 줄기세포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은 것은 연기를 잘해서뿐만 아니라 연극을 통해 영국 사람들의 언어를 순화해 주었고, 영어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이다. 이 땅에는 연극을 사랑하는 수많은 젊은이가 있다. 바로 이들이 거칠어진 우리말을 부드럽게 순화해 줄 것이며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세계만방에 전해 줄 것이다.

얼마 전 암 투병 중인 연극배우 이주실 씨가 전남의 한 시골 중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학생들이나 무척이나 행복한 모습이었다. 연극은 분명 서로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묘약(妙藥)이다.

백형찬 서울예술대 교수 교육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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