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남자가 남자답지 못하면

  • 입력 2006년 4월 7일 02시 59분


“세상엔 세 가지 성(性)이 있다”로 시작되는 농담이 있었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줌마란다.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나기 무섭게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말하자면 여성성을 잃고 뻔뻔해진 중년 여성에 대한 조롱이다.

미안하게도 여자한테 여자답지 못하다는 건 큰 욕이 못 된다. 여자답지 않아서 생기는 이익이 더 크다는 것을 남자들은 몰랐던 모양이다.

정치판의 못난 남자들

요즘엔 아줌마보다 역겨운 성이 판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남자답지 못한 남자’다. ‘왕의 남자’의 이준기 같은 남자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짜증날 만큼 남자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짜증은 날망정 남자답다는 소리가 비판이 아님을 이준기도 알고 나도 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페미니스트에게 공격받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언론탄압이 무서워 과학적 연구 결과까지 외면할 순 없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은 뇌 구조와 호르몬 유전자에서 남녀가 다르다는 사실을 속속 밝혀냈다.

개인차가 분명 존재하지만 남자는 더 경쟁적, 공격적이고 의지가 강하다. 남자를 움직이는 힘이 티모스(thymos·인정받으려는 욕구)라고 저 옛날 플라톤은 정리했다. 정치가 남자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정치판에 왜 이렇게 남자답지 못한 자가 많은지, 악성 돌림병이 퍼졌나 싶다. ‘남자다움’이라는 책을 낸 미국 하버드대 하비 맨스필드 교수는 ‘위험에 맞서는 자신감’이 남자다움의 요체라고 했다. 무모하게 대드는 게 아니라 옳은 일을, 옳은 때, 옳게 만들되 그 책임까지 져야 남자답다. 남 탓부터 하고 보는 우리나라 정치꾼은 남자답지 못한 남자의 전형이다.

특히 언론 탓은 갈수록 중증이 돼서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현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다’는 보도에 대해 “국가의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며 펄펄 뛰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해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한 언론이 국가 질서를 해쳤다니, 앞으로는 정부가 주는 자료만 받아쓰라는 얘기다.

이 정부가 만든 신문악법(惡法)에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 들어간 이유를 확실히 알겠다. 이름도 똑같은 ‘사회적 책임법’을 지난해 발효시켜 언론의 숨통을 죄는 베네수엘라와 어쩌면 그렇게 닮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선거를 없애지는 못하는 독재정권이 가장 쉽게 독재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언론탄압이고, 언론자유만 있어도 독재자가 1년 더 권력을 지킬 가능성이 20%까지 줄어든다는 조사 결과도 아는지 궁금하다.

위에서부터 내려온 돌림병으로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태도를 빼놓을 수 없다. 경제부총리 시절 “자립형사립고를 늘려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하고, 지난해 말엔 천주교 주교 앞에서 “20개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하고는, 대통령의 양극화 발언에 ‘앗 뜨거워’ 하듯 말을 바꾸는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도저히 남자라고 봐주기 힘들다. 하긴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던 정태인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자마자 “그들은 미쳤다”고 공격하는 조직에서 일말의 남자다움을 바라는 게 잘못이다.

국가운영 책임 맡길 수 있나

다행히도 남자다움은 남자에게만 있는 속성이 아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경쟁력과 단호함, 책임감을 갖춘 남자다운 여자로 꼽힌다. 총리실 첫 출근 날 한명숙 총리 후보자가 보여 준 자세도 남자다웠다. 여자라고 부드러운 모성만 기대하다가는 큰코다칠지 모른다.

남자다움이 지나치면 폭력이나 전쟁으로 폭발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남자다움은 국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 정치무대에 여성 리더가 새롭게 떠오르는 것도 남자답지 못한 남자 정치인에게 국민이 질린 탓이다. 남자가 남자다울 수 없다면 차라리 성을 바꿔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국정을 떠나 가정에서만 조용히 활개 치든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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