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열매를 20%가 독점했다는 이른바 승자독식론을 편 청와대다. 과연 압축성장이 20%에게는 기적이고 80%에게는 절망인 두 개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는가. 통계로 검증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선 통계청의 도시근로자가구 가계수지 동향이 사실상 유일한 장기(長期) 자료다.
이를 재분석해 1979년 이후 작년까지 27년간의 계층별(최하 1분위∼최상 10분위) 명목소득 증가율을 보자. 중간층(4∼7분위)이 연평균 17%대로 가장 높고, 상위층(8∼10분위)은 16%대, 하위층(1∼3분위)은 13.9∼16.6%다. 하위층 소득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그들에게 분배는 없었다. 선(先)성장 후(後)분배는 거짓 약속이었다”는 청와대 주장이야말로 거짓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실질소득을 보면 상위층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1999년에 회복했지만 2001년 이후에는 답보 상태다. 중간층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8년 만인 2004년에 회복했다. 하위층은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2002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계층별 소득 분배율(셰어)도 보자. 상위 30% 계층의 합계소득은 27년간 평균이 전체 소득의 51%대이고 작년도 그 수준이었다. 중간층의 소득 점유율은 외환위기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가 2002년부터 완만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위 30% 계층의 소득 셰어는 고도성장기에 상대적으로 높아 1993년 15% 선에 이르렀으나 외환위기 충격으로 1999년 전후에 13%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하위층 소득 점유율은 그 후 2002, 2003년에 다시 증가세를 보이다가 2004년에 감소세로 반전했고 지난해는 가장 낮은 13%에 그쳤다. 하위층이 성장 둔화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더 많은 분석항목이 있지만 이 정도만 봐도 중간층이 붕괴되고 상하층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양극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최하위층의 빈곤화가 현 정권 출범 후 심해졌다는 특징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잘나가는 20%’ 때문에 80%가 희망을 잃었다는 주장은 틀린다. 70% 이상이 성장의 열매를 많이 가져갔으니 하위층의 사회안전망에 더 신경 쓰자고 설득하는 게 정상이다.
빈곤화가 진행됐다고 하지만 하위층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난날의 압축성장에 따라 절대빈곤에서 탈출했다. 어느 소득계층이나 자신보다 상위층에 대해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양극화를 내세우며 ‘가진 자에게서 빼앗는’ 경제를 부채질하면 성장은 더 멀어진다. 남는 것은 일부 계층의 빈곤 악순환이다. 특히 일자리가 없는 ‘소득 제로’ 상태야말로 최악의 격차다.
요즘 일본에서도 소득격차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양상은 우리와 사뭇 다르다. 격차문제를 들고 나오는 쪽은 민간이고, 정부는 오히려 “과장하지 말라”고 한다. 역대 일본 총리들의 ‘가정교사’로도 유명한 경제학자 출신의 다케나카 헤이조(전 금융·경제·재정담당상) 총무상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인이여, 격차를 두려워 말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의 경제개혁 설계사인 그는 “민간이 경쟁을 통해 강해지는 길밖에는 일본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실천해 온 지론은 명쾌하다. “작은 정부를 만들어 규제를 지속적으로 줄여야만 민간부문이 활성화되고 경제가 성장한다. 일본은 1980, 90년대 정부가 커졌지만, 경쟁을 피하며 정부에 기대려는 풍조도 생겨 빈부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 10년은 일본에 있어서 이상(異常)한 시기였다. 공공부문 개혁에 국가의 명운(命運)이 달려 있다. 증세(增稅)보다 경제 활성화가 우선이며 경제를 성장시켜 세수(稅收)를 늘려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한참 다르다. 어느 쪽이 국력을 더 키울 수 있을지, 독도문제까지 걸려 마음이 착잡해진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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