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안드레스 오펜하이머]무너지는 남미 경제통합의 꿈

  • 입력 2006년 5월 2일 02시 59분


이 얼마나 아이로니컬한 일인가.

중남미 12개국 지도자가 경제 통합을 위한 지역공동체 설립을 선언한 지 채 2년도 안 돼 이 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유럽 제지공장 설립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가 유치한 이 공장이 양국 국경 부근에 세워질 경우 자국에 환경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칠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는 해묵은 영토 문제로 다투고 있다. 이 와중에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안데스공동체(CAN) 탈퇴를 선언해 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2004년 12월 중남미 정상들은 페루 쿠스코에 모여 인구 3억6000여만 명의 단일 시장을 만들자는 남미공동체 창설에 합의했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로 이뤄진 CAN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가 회원인 또 다른 남미 자유시장 메르코수르를 통합하려는 계획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 정도가 흐른 지금 남미는 심각한 정치 경제적 분열 위기에 빠져 있다.

지난달 19일 차베스 대통령은 CAN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페루와 콜롬비아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다. 차베스 대통령은 “협정이 체결되면 페루와 콜롬비아에 무관세 미국산 제품이 밀려들 것”이라며 “이들 국가에 대한 베네수엘라 수출이 타격을 입게 된다”고 탈퇴 이유를 밝혔다.

매년 베네수엘라에 21억 달러의 상품을 수출해 온 콜롬비아는 차베스 대통령의 CAN 탈퇴 결정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는 미국에 하루 150만 배럴의 석유를 팔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베네수엘라는 다른 ‘형제 국가’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볼리비아도 싸움에 뛰어들었다. 차베스 대통령의 사상적 동지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인디오계 원주민 출신인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는 “톨레도 대통령이 미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페루의 인디오 부족뿐만 아니라 남미 전체를 배신했다”고 비난했다.

톨레도 대통령은 최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의 CAN 탈퇴는 페루와 콜롬비아가 미국과의 FTA 체결을 철회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라며 “석유가 펑펑 솟아나서 시장을 개방할 필요가 없는 나라는 자기 나라나 잘 돌보라”고 말했다. 석유 수입이 필요한 다른 나라까지 곤경에 빠뜨리지 말라는 경고였다.

주변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한 경우 베네수엘라의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차베스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주변국에 대한 베네수엘라의 비(非)석유제품 수출 비중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CAN 탈퇴는 순전히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CAN 탈퇴를 통해 노리는 또 다른 목적은 CAN-유럽연합(EU) 간 FTA를 막으려는 것이다. 이 협정은 이달 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남미-유럽 정상회의’에서 59개국 정상이 참가한 가운데 체결될 예정이다.

이 회의 의장으로는 톨레도 대통령이 내정돼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CAN을 약화시킴으로써 회의에서 톨레도 대통령이 부각되는 것을 막으려는 심산인 듯하다.

남미 지역에서 근래 보기 드문 강력한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남미 통합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것,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안드레스 오펜하이머 마이애미헤럴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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