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일과 삶/신용진]귀가 두 개인 까닭은

  • 입력 2006년 5월 18일 03시 00분


작년 여름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분인데 대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회사를 차린 지 몇 년 되지 않아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배신당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으니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전화를 하고 찾아온 그분은 “회사 직원 중 몇 명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개인적인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아 챙겨서 회사에 손해를 많이 끼쳤으니 배임죄로 고소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였다. 그분은 점잖은 외모에 믿음을 주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논리정연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면서 관련 자료까지 다 있다고 하였으므로 직원들이 배임했다는 사실을 더는 의심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저런, 나쁜 직원들이군요. 손해 보신 액수가 얼마신지요? 고소하는 것과 동시에 민사적으로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겠습니다.”

이 건은 조언해 주는 것으로 끝냈다.

시간이 지나 올봄 초에 또 다른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의 친구와 후배가 자신들이 다녔던 회사의 사장에게서 고소를 당해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상담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직접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정확한 상담에 도움이 되므로 당사자들을 불렀다. 명함을 받는 순간 이름이 눈에 익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 사실관계를 들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당사자들은 다름 아니라 작년 여름에 찾아왔던 사장님이 고소한다고 했던 바로 그 직원들이 아닌가.

처음에 그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는 범죄자의 변명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판단은 달라지고 있었다. 그들의 설명은 타당함과 합리적인 이유,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나의 생각은 이미 이들에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사장님은 당신들에게 큰 잘못을 했군요. 확인도 하지 않고 당신들을 의심해서 고소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은 형사적으로 처벌받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놀랐던 것은 한 사건으로 양쪽 당사자로부터 상담 의뢰를 받았던 흔치 않은 일을 겪은 탓도 있었지만,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한쪽의 이야기만을 듣고 판단해 버리는 불균형한 나의 사고습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난 얼마나 사물의 일면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집에 들어왔더니 작은아이가 툴툴댄다.

“아빠, 형아가 때렸어.”

다른 때 같으면 “너 이놈, 동생 때리지 말라고 했지?”라고 했겠지만 조용히 큰아이를 불렀다.

“동생을 때렸니? 왜 그랬니?”라고 묻고는 대답을 기다렸다. 난 이제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말에 모두 귀 기울이며 살 생각이다.

신용진 법무법인 이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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