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민단과 총련

  • 입력 2006년 5월 18일 03시 00분


“남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남녀의 삼각(三角)관계와 같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계열 학교를 무대로 한 일본 영화 ‘박치기’의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이 최근 한국에 와서 한 말이다. 60년에 걸쳐 남북의 ‘대리전’을 치러 온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총련, 그리고 일본 당국의 관계도 비슷하다.

▷1950년 일본 법무성의 재일동포 통계에 따르면 한국 국적은 4만 명(7.4%), 조선(북한) 국적은 50만 명(92.6%)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일동포 문제에 무관심했던 반면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앞장서 민족학교 설립에 나서는 등 적극 지원한 결과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성장의 ‘후방 기지’로 재일동포를 활용하기 위해 민단 지원에 나서면서 따라잡기 시작해 이제는 민단 40만 명, 총련 10만 명(추정)으로 역전됐다. 그래도 총련은 1980년대까지 일본 정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74년 총련계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처리 과정에서 일 정부는 “총련을 규제하라”는 한국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

▷민단의 하병옥 단장이 어제 도쿄 지요다 구(區)에 있는 총련 본부를 찾아가 서만술 의장과 회담을 열고 6개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재일 한국인 사회의 남북선언’이라 할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반도에서의 6·15선언과는 6년의 시차가 있지만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합동 응원을 펼친 지 15년 만의 결실이다.

▷총련은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최대 10억 달러를 북한에 송금했지만 9·11테러 이후 1000달러가 넘는 송금은 다 규제받고 있다. 북한이 민단과의 회담에 응하라고 총련 측의 등을 떠민 것도 ‘돈줄’을 더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 당국은 일본 내에서 퍼지는 ‘민족끼리’ 합창에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일본의 대북 압박을 느슨하게 만들려는 북한 측의 ‘계산된 이벤트’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민단과 총련의 화해가 반갑다. 물론 북한과 총련의 진정성이 중요하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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