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2>800 two lap runners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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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800m를 시작했느냐고 묻는다면, 비 갠 날의 잔디 냄새 때문이라고 대답할 거야. 육상경기장은 정말 특별한 곳이다. 아니, 생긴 꼴은 정말 단순해, 단순하다니까. 그렇지만 처음 그 사발 바닥에 내려섰을 때는 다리가 떨렸다. 응, 솔직히 말해서, 얼고 말았지. 하늘이 스탠드에서 올려다보는 거와는 달라 보여. 엄청 커. 아무것도 없어. 텅하니 빈 하늘뿐이야. 새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는 거야.―본문 중에서》

‘800 two lap runners’는 구어체의 문장이 간결하고 힘찬 소설이다. 나카자와와 히로세라는 두 화자의 일인칭 시점이 교대하는 플롯으로 짜여 있다. 두 화자는 육상 800m 경주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우리는 그런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들은 육체의 임계점까지 달리는 질주 본능을 타고났을 뿐만 아니라, 비 갠 날의 잔디 냄새, 육상경기장의 우레탄 바닥에 누워 바라보는 푸른 하늘, 질주할 때 살갗을 스쳐가는 바람, 질주 뒤 급격한 에너지의 소모와 더불어 오는 상쾌한 피로감을 사랑한다.

속근과 지근을 동시에 쓰고 순발력과 지구력을 함께 갖춰야 하는 800m 달리기. 심폐기능의 극한에서 터져 나오는 속도, 살갗을 스쳐가는 바람, 폐를 돌아나가는 차가운 공기의 느낌.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연애와 관능에 대한 호기심. 열혈 러너와 수재형 러너의 피할 수 없는 정면승부. 산소부채량(산소 부족 상태에서 에너지를 최대로 내고 운동 후 부족한 산소를 보충하는 능력)의 극한점을 통과하며 800m의 트랙을 주파하는 순간 두 주자의 몸통과 다리의 근육에 전달되는 힘의 결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마치 삶의 정수는 달리는 것에 있는 듯 경주에 집중하는 두 화자의 따뜻하고 단련된 육체의 감각이 이렇듯 명민하게 살아 있는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지적 완벽함에 대한 지향이라든가, 청년기의 생에 대한 관념적 고민이나 방황은 최소한도로 생략됐다. 오로지 건강한 육체의 청신한 감각에 포획된 하늘과 바람, 땅, 연애, 땀과 정액, 첫 섹스, 동성애, 공기 냄새, 불균형한 조화, 조금은 비틀린 감정 따위가 선명하다. 그것들은 생물학적 생명의 본질이라는 초점에 맞춰져 있다.

사실 사람의 달리기 능력은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이 지구 위의 가장 위대한 포식자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으로 고무되는 마음, 그리고 장기적 비전과 전략,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커다란 뇌의 덕분이다. 이 소설은 스타카토처럼 연결되는 단문이 단거리 주자의 보폭 같은 리듬으로 이어지는데, 수렵채취 시대의 원시성에 더 가까운 육체의 힘에 대한 작가의 찬탄 같은 것이 이 문장들에 배어 있다.

이 소설은 화자의 의식 반경에 들어오는 사람과 사물들에만 집 중하고 그것만을 보여준다. 800m 경주와 경기장, 연습, 같은 또래여자와의 섹스와 연애가 세계의 전부다. 이것이 건강과 활력으로 충만한 청년의 세계다 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몸의 감각에 집중하면 할수록 사람은 동물에 더 가까워진다. 그만큼 단순하고 순수해진다. 이 소설은 800m의 레이스에 압축시킨 약동하는 젊음의 세계, 그 단순성과 순수함을 흠뻑 머금고 있다. 그 비상한 활력과 질주 본능, 청신한 감각의 연애 등이 잘 어우러진 청춘소설이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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