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옵티콘’ 같은 사회가 오고 말 것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예견대로일까. 현대인은 누군가가 자신의 통신 비밀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산다. 휴대전화 위치추적이나 통화기록 조회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진다. e메일은 본인이 지워 없애도 통신회사가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은 ‘안보 테러’ 방지를 외치는 국가정보기관 속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다. 개인은 알몸의 ‘죄수’ 신세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테러 방지’를 들어 수천만 명의 통화기록을 뒤진 일로 시끄럽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알 카에다를 잡기 위해서다. 정부는 영장 없이 엿듣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의회에서는 “수천만 명이 알 카에다와 관련돼 있다는 거냐”고 되받아친다. 전화회사인 벨사우스와 AT&T 등에도 불똥이 튀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으니 2000억 달러(약 200조 원)를 내라는 집단소송을 당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1992년 부산 ‘초원복국집 도청사건’을 계기로 통신비밀보호법이 겨우 제정됐다. 법의 내용은 엄격하다. 개인 대화의 녹음 청취는 물론이고 공개 누설도 할 수 없다. 어기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정보기관의 감청도 ‘국가안보에 상당한 위험’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법 따로 현실 따로’여서 안기부 X파일 사건 같은 추악한 정보기관 도청이 끊이지 않았다. 민간에서도 프라이버시 침해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와 같은 천문학적 액수의 배상청구도 시간문제일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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