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보 정치인에서 날렵한 마라톤 주자로 변신했던 전(前) 독일 외교장관 요슈카 피셔는 달리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을 향해 달린다. 달리기는 나에게 일종의 명상이다.”
정말 많은 사람이 달린다. 다이어트를 위해, 건강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저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그들은 하나같이 달리기의 또 다른 매력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달리기 안에는 어떠한 매력이 숨겨져 있기에 많은 사람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달린다’는 전 독일 외교장관 요슈카 피셔의 달리기 자서전이다. 네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음을 인식한다. 그래서 112kg의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달리기를 하는 것으로 삶의 개혁을 시도한다. 달린 지 1년 만에 37kg 감량에 성공, 그리고 마라톤에 도전해서 3시간 40분대에 완주한다. 이 책은 피셔의 달리기를 통한 자기 개혁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달리기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벌써 18년째다. 하지만 내가 달리기의 참맛을 알게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6년 춘천마라톤과 1997년 동아마라톤에서 우승할 때까지도 난 내가 달려야 하는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무조건 이기기 위해 달릴 뿐이었다. 더는 달려야 할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1997년 운동화를 벗어던졌다. 별 미련도 없었다. 그 이후로는 운동화도 쳐다보지 않았고, 운동장에 발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 지긋지긋한 달리기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달린다’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달리기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요슈카 피셔의 달리기가 체중 감량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에서 달리기는 결코 큰 의미가 되지 못했을 것임을 알게 됐다. 그가 지금까지 달리기를 즐기면서 자신만을 위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달리기 안에 숨겨진 즐거움과 행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승부가 아닌 삶 자체로서의 달리기, 나를 찾는 여행으로서의 달리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달리기에 대한 애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다시는 신지 않겠다고 처박아 놓았던 운동화를 꺼내 신게 되었다.
방선희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대한육상경기연맹 사회체육위원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