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시험운행 합의는 우리 측이 북한에 40억 원어치의 철도 자재와 수백억 원어치의 경공업 원자재를 지원하기로 하고 얻어낸 것이다. 줄 것은 다 주고, 시도 때도 없이 뒤통수 맞는 남북대화를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지 답답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날까지 “북한에 탑승자 명단을 통보해 군부의 동의를 얻겠다”고 호언(豪言)했으니, 이렇게 ‘순진한’ 정부에 대북정책을 맡겨야 하는 국민이 딱하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달 북한에 가겠다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그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통일문제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2000년 6·15정상회담에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한 자신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다시 협의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나 DJ도 북의 약속 위반을 먼저 지적해야 옳다.
DJ는 통일방안을 논의할 ‘당사자 적격(適格)’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연합제안은 개인적인 ‘3단계 통일방안’의 첫째 단계로, 국회 동의를 받아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 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남북연합안과 다르다. 더욱이 ‘개인적 방북’이라면서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통일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것 자체가 월권(越權)이다.
북한이 DJ의 방북을 선뜻 수용한 것은 평화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제재와 국제사회의 6자회담 복귀 압박을 피하기 위한 카드로서의 성격이 짙다. 자칫하면 북에 이용당하고 국내의 혼란만 키울 우려가 높다.
DJ의 역할은 1994년 북핵 위기 때 김일성 주석을 면담해 돌파구를 마련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처럼 ‘선량한 중재자’에 국한돼야 한다. 자기과시의 노욕(老慾)에 계속 집착해서는 후유증만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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