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10>벌거벗은 산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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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가파르바트의 저주’를 말하는 것은 히말라야의 본성을 모르는 것이다. 낭가파르바트가 누군가에게 ‘운명의 산’이 된다면, 그것은 악마가 낭가파르바트를 지배하기 때문이 아니라, 낭가파르바트가 우리 인간보다 무한히 월등하고 숭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문 중에서》

지난해 5월 한국 ‘낭가파르바트 루팔 벽 원정대’의 김창호, 이현조 대원은 낭가파르바트(해발 8125m) 루팔 벽을 라인홀트 메스너 형제가 초등한 지 35년 만에 재등에 성공했다. 낭가파르바트는 등반대 수십 명이 목숨을 잃어가면서까지 자신들의 마음을 바친 산이다. 한국팀의 두 대원은 깊은 우정을 간직하고 살아 돌아왔지만, 라인홀트는 30여 년 전 동생 귄터와 함께 오른 이 산에서 혼자 살아 돌아왔다.

‘벌거벗은 산’은 자신의 야망 때문에 동생을 희생시켰다는 비난을 평생 감수하며 살아온 라인홀트가 당시의 일기와 편지를 공개하면서 자신의 인생 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밝힌 고해성사다.

히말라야의 8000m급 14좌를 인류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가 히말라야에서 첫 번째로 오른 산이 바로 낭가파르바트다. 그는 1970년 5월 헤를리그코퍼 박사가 이끄는 독일 원정대에 동생과 함께 참여했다.

라인홀트는 루팔 벽을 통해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악마와도 협상할 기세였다. 악천후와 눈사태로 한 달 이상 등반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원정대는 마지막 시도를 했다. 잘못된 일기예보로 라인홀트가 단독 등반에 나서고, 동생 귄터는 보조 로프를 옮기는 임무를 지시받았다. 하지만 귄터는 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반나절 후 형을 따라나섰다. 15년간 자일 파트너로 산에 오른 형제는 고난도 기술을 요구하는 거벽 구간을 돌파하고 ‘앞으로 위로’의 움직임만 지루하게 반복하면서 초인적 능력으로 루트 초등을 기록했다.

하지만 날은 곧 어두워지고 영하 40도의 지독한 추위 속에서 귄터가 심하게 탈진하면서, 산소 부족은 환각 상태로 이어졌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그들은 각자 단독으로 등반을 시작했기에 로프가 없었다. 형제는 올라온 루트 대신 좀더 쉬워 보이는 반대편 디아밀 루트로 하산을 감행했다. 절망에서 나온 선택이었지만 동시에 절망 속으로 들어간 선택이기도 했다. 구조 요청을 해 보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실패하고 비극의 오디세이가 시작된다.

우박을 동반한 돌풍이 몰아치며 모든 감각기관이 마비된 형제는 고도에서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졌다. 이틀간의 비바크(천막 없이 하는 야영)로 귄터가 처지기 시작했고 거리가 멀어졌다. 라인홀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혼자였다.

라인홀트는 온밤을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동생을 찾아 돌아다녔다. 8000m의 고도는 신의 영역이라고 한다. 그곳은 절대 고독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인간이 온전하게 활동할 수 없고, 모든 조건이 적대적인 환경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벌거벗은 산’은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모두 드러나게 만드는 산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자의 처절한 내면에 대한 기록이다. 삶과 죽음의 희미한 경계 위에서 끈질기게 모험에 도전하는 등반가들의 독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호경필 한국산서회(山書會)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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