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의 열기 속으로 30선]<13>축구의 사회학

  • 입력 2006년 6월 1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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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축구의 지구적 영향력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마땅하다. 뒷북치는 말일지는 몰라도, 축구가 전 세계 최고의 스포츠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문화나 스포츠도 축구 지지자들의 정열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본문 중에서》

스포츠의 사회학도 아니고 축구의 사회학이라니! 혹시 아무 데에나 그저 사회학이란 딱지를 붙여 적당히 권위를 부여하고 책을 팔아먹으려는 그저 그런 책 중 한 권이 아닐까. 하지만 책 내용을 조금이라도 훑어보면 아마 누구든 곧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리라.

‘축구의 사회학’이 나오기 위해서는 20여 년에 걸쳐 활발하게 펼쳐진 스포츠 관련 연구의 축적이 필요했다. 특히 현대 스포츠의 초기 역사와 발전 과정에 대한 스포츠 사가(史家)들의 꼼꼼한 정리와 훌리건 현상에 대한 사회학자와 문화 연구자들의 분석,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최근의 연구가 없었다면 이처럼 축구라는 단일 종목에 대한 사회학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팬의 열정을 간직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저자의 자료 결합 능력이 덧붙여진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저자 스스로 여러 군데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분산돼 있던 기존 연구들을 축구라는 하나의 주제 속으로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 구실을 했다. 물론 그 상상력이 무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전통적 축구 강세 지역인 유럽과 남미에서 축구 후진지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축구에 대한 저자 자신의 풍부한 지식이 상상력의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국 문화연구의 전통에 걸맞게 다양한 분과학문의 연구 업적에서 닉 혼비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스포츠를 다룬 온갖 종류의 저작을 망라한 저자의 개방적인 태도가 더해졌다.

그를 통해 저자는 ‘다른 문화와 국가들이 축구의 해석과 실천으로 특정한 양식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비록 관점은 다소 다르지만 근자에 널리 유행하는, 민족의 형성이라는 논의의 맥락과도 맞물려 있는 이 책에서 독자는 2002년 월드컵이 우리 사회에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다른 나라의 팬 문화를 통해 국내 축구리그를 대하는 우리의 평소 자세도 돌이켜 볼 수 있을 것이고. 반성의 과정에서 축구의 ‘숭고함’을 앗아가려는 상업주의의 압력에 저항할 각오를 다질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전통→현대→탈현대의 틀을 빌린 설명 방식이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지고 역사가들의 분석에 비해서는 꼼꼼함이 조금 떨어진다는 점. 하지만 이 책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풍부히 가미한 대중교양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정도의 아쉬움은 충분히 삼키고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라도 ‘스트라이커의 모습에서 문화적 숭고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의 글이라면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한번은 꼭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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