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통령 등 뒤에 숨어 있는 전현직 비서와 장관들, 그리고 대통령을 몰아붙여 온 386 의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통령이 사람 잘못 썼다는 얘기는 나중에 하자.
이정우 씨와 김병준 씨 정도 되면 ‘정책을 오도(誤導)한 우리 잘못이 큽니다’며 석고대죄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이 씨는 21세기 선진국 어디에도 없는 오류투성이 ‘헨리 조지 토지사상’을 끌어들여 반(反)시장적 부동산 정책을 밀어붙인 주모자였다. 그는 논리의 유희(遊戱)로 대통령을 설득해 사회주의보다 더한 반사유관(反私有觀)을 정책에 주입했다. 김 씨도 시장의 반란을 막을 능력이라곤 없으면서 ‘헌법만큼 고치기 힘든 부동산 제도’ 운운하며 위헌에 가까운 재산세 중과(重課)에 앞장섰다. 시장 원리를 외면한 정책은 의도를 비웃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 부익부 빈익빈의 급속한 확대다. 한쪽에서는 세금폭탄에 대한 복수심을, 다른 쪽에선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 것이 이번의 표심(票心)이다.
이 씨와 김 씨는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책임을 자인(自認)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자존심 강한 대통령도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 정책을 곁들여 부동산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쉬울 것이다.
애당초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긁어 부스럼’이었음을 이 씨와 김 씨가 정말 모를까. 설혹 이들이 순수했다 치더라도 ‘순진한 무능’도 그런 자리에선 죄다.
현 정부 경제부총리를 거쳐 교육부총리로 있는 김진표 씨도 고위 관료로서 책임을 느껴야 할 사람이다. 원래 ‘경쟁 교육’을 강조해 온 그는 교육부총리가 된 뒤 평등 교육과 입시 규제에 앞장서는 ‘코드맨’으로 변신했다. 이정우 씨가 어느 면에서 ‘확신범’이라면 김진표 씨는 노무현 코드 영합형 같다. 그가 전교조식 교육관에 치우친 대통령과 청와대 386들의 비위를 맞추는 대신에 경쟁력을 키우는 교육을 꾸준히 추구했더라면 노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조금은 덜했을 것이다.
정통 관료라면 청와대가 주도(主導)하는 무리한 이념형 경제 정책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뻔히 알 만했다. 그런데도 한덕수 경제부총리,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등은 정치 논리를 견제하기는커녕 한 수 더 뜨기를 서슴지 않았다. 한 부총리는 올해 초 “강력한 부동산 대책으로 건설업이 다소 침체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부동산을 정상(正常)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 총대를 메야 할 변 장관은 방만한 재정 운용을 옹호하기에 바빴다. 추 장관은 좌충우돌 돌격대장 같았다. 현 정부에서 3년간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낸 강철규 씨는 투자 위축에도 아랑곳 않고 출자총액제한 제도와 기업지배구조 개입을 통한 기업 옥죄기를 개혁으로 내세웠다. 규제 등쌀에 파김치가 된 기업들은 투자 의욕을 잃었다. 결과가 나쁜 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다.
청와대 현직 참모들은 ‘우리가 민심을 너무 역행해 대통령님이 다 덮어쓰게 됐습니다. 저희를 치십시오’라고 왜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간신(奸臣)들이 대통령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나. 탄핵 역풍 덕에 금배지를 줍다시피 한 여당의 수구꼴통 좌파 386들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되돌아간다. 버거운 상대는 용인(用人)하지 않고 만만한 하수(下手)들을 골라 쓴 것부터, 비판 세력과 싸우느라 ‘내 사람’의 잘잘못에 대해선 신상필벌(信賞必罰)을 포기한 것까지 다 최대 주주 잘못이다.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청와대에 아마추어는 없다”던 문희상 씨가 “선거결과에 남 탓 하는 것이 제일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낙조(落照)가 느껴진다.
아무튼 인사(人事)가 만사다. 국민도 노 대통령만 탓할 게 아니라 다음 대통령 잘 고를 준비를 해야 한다. 대선이야말로 국민 손으로 하는 최대의 운명적 인사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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