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인 윤 씨는 2년 전에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이웃에 대한 창피함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면담치료를 통해 남편의 과거 외도 때문에 자신의 인생 전부가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20대 남성인 박 씨는 현재 삼수생이다. 시험 전만 되면 긴장되고 불안해져 시험을 망치곤 했다. 항불안제와 인지행동 치료를 통해 그는 막연한 불안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험 앞에 흔들리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진료실에서 뵙는 많은 분은 “여기까지 오는 데 수년이 걸렸다. 그동안 힘들었지만 정신과 병원까지 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이런 분들의 말을 듣노라면 ‘좀 더 일찍 도움을 받았더라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밤에 잠이 잘 안 온다거나,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거나, 출산 후 의욕이 없고 멍하다거나,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거나 정신건강과 관련되는 부분은 실로 부지기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과에 오기를 참 꺼린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정신과’라는 명칭을 바꾸려고 하는 등 다양한 이미지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거부감이 줄어들기를 막연히 기대하기보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지 찾아 고쳐야 할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멀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서구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가족 중심적 문화여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는 가정 내에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정 내 문제를 밖으로 가져가는 것은 무척이나 체면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병원에 가기보다는 빨리 기분을 추스르기를 강요받았고, 남편에게서 폭력을 당해도 참고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겨 왔다.
임상 현장에서 보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이나 생소함이 점차 줄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친구를 만나듯 쉽게 정신과 의사를 찾고 사소한 문제도 전문가와 상담하는 구미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병원을 찾는 시기가 늦다.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견디기 어려울 만큼 힘든 일을 겪곤 한다. 그럴 때 함께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필자와 같은 정신과 의사다. 마음을 터놓고 하소연하고 호소해 보기를 권한다. 사람들은 대개 그 과정에서 스스로 해법을 발견하게 된다. 정신과 의사는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다.
김율리 인제대 서울백병원 의사·신경정신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