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수능 강의는 ‘싸고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해서 교육의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방송입니다. 2004년 정부는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하면서 10대 정책과제 중 첫 번째로 EBS 수능 강의를 내세웠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수업과 EBS 수능 방송만 제대로 공부해도 대학입시를 잘 치를 수 있게 하겠다면서 정부가 260억원을 지원해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이 여기 있습니다. EBS 수능 교재의 판촉요원 역할을 해온 것이 바로 정부입니다. 교육당국은 수능시험 때마다 “EBS 수능 강의를 70% 이상 반영했다”고 강조했습니다. 2007학년도 수능 세부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학교 공부 충실히 하고 EBS 잘 들은 수험생은 자신감과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정부와 EBS가 합작해서 수능 교재 폭리를 챙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정부의 판촉 덕분에 수능 교재 시장을 독점해온 EBS는 책값을 제조원가의 5배로 책정해놓고 382억원을 벌었습니다. EBS는 2004년에도 똑같은 일로 감사원 지적을 받고는 “판매이익을 수험생을 위해 쓰겠다”고 보고해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익금을 공익에 쓴 부분은 3.5% 정도이고 나머지는 임직원들한테 특별격려금으로 나눠주거나, 방송제작 기획비라면서 식대와 회식비로 써버렸습니다.
그러니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배신당한 기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은 수업시간에도 EBS 교재를 쓰는 학교가 적지 않습니다. 사실상 교과서가 돼버린 셈입니다. 여기서 공기업인 EBS가 폭리를 취하고, 또 저희들끼리 나눠먹었다니 참으로 벼룩의 간을 내먹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요즘 EBS 수능강의는 갈수록 질이 낮아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감사원도 “다른 민간사이트에 비해 부가서비스가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별 도움을 못 받으면서 안 보면 불안해지는 이중부담을 진 형편입니다.
EBS 사태는 국가가 대학입시를 관리함으로써 나타나는 비효율과 부정부패, 그리고 도덕적 해이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교육방송을 활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대학입시를 일일이 규제하고, 수능시험과 논술시험까지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나라의 교육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EBS가 수능교재로 폭리를 취한 문제 때문에 방송현장에서 열심히 강의하고, 또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평가절하 돼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번 사태의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EBS는 당장 수능교재 값부터 대폭 인하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EBS 사태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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