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박세리의 부활

  • 입력 2006년 6월 13일 03시 00분


나쁜 일은 보통 겹쳐서 온다. 일이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뒤집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때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박세리가 그랬다. 2004년 5월 미켈럽울트라오픈에서 통산 23승을 달성한 뒤 꼬집어 설명할 만한 이유도 없이 부진의 늪에 빠졌다. 지난해에는 어깨와 손가락 부상으로 시즌 도중 아예 골프채를 놓았다. 12개 대회를 끝으로 ‘병가(病暇)’를 내자 “이제 박세리는 끝났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골프 스윙의 교과서’로 통했던 그다. 단단한 하체로 버티며 간결한 스윙으로 강력한 파워를 만들어 냈다. 정확도도 뛰어났다. 미국 언론은 ‘머신라이크(machinelike·기계 같은)’라는 말로 압축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에는 러프에서 헤맸다. 치욕적인 80대 타수도 세 차례나 기록했다. 온갖 분석과 추측이 뒤따랐지만 명쾌한 해법은 없었다.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마음속의 부진’이 원인이라는 정도였다. 그 ‘마음의 변화’가 무언지는 알 길이 없다.

▷지난 시즌 상금 랭킹 102위로 밀려났던 박세리가 화려하게 부활했다. 어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에서 연장전 끝에 호주의 캐리 웹을 제치고 우승컵을 안았다. 2년 1개월 만의 극적인 슬럼프 탈출이다. 1998년 외환위기로 실의(失意)에 빠져 있던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 준 바로 그 대회에서 다시 챔피언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해 US여자오픈에선 절망적인 순간,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스스로를 구원(救援)하기도 했다.

▷얼마 전 아버지를 잃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티에 공을 얹을 때마다 누구보다도 초조하다. 하지만 그 중압감에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그 긴장의 순간을 즐긴다”고 했다. 역대 LPGA 최다승(88승)에 빛나는 캐시 위트워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프로골퍼라 하더라도 치지 말고 즐겨야 한다.” 박세리 부활의 비밀도 그런 건지 모른다. 그동안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 골프를 생활로 즐기는 ‘마음의 훈련’을 했다니 말이다.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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