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주는 9가지 삶의 교훈(Play it as it lies: Golf and the Spiritual Life)’, 흔히 접하는 상투적인 제목에 책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책의 원제 중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Spiritual’. 골프를 영적인 문제까지 연결시킨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 아닌가 하는 강한 반감이 들었다.
다시 책을 들고 표지를 넘기자 눈길을 잡은 것은 저자의 직업이었다. 저자의 직업이 가톨릭 신부? 도대체 골프와 근엄하신 신부님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 신부님이 길 잃은 양들은 버려두시고 골프만 즐기셨다는 말인가? 골프가 인간에게 거창한 영적, 종교적 그 무엇인가를 주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원제에 대한 강한 반감과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속에 물든 한 성직자가 인세 몇 푼 벌어 보고자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골프를 영적 문제로 그럴듯하게 꾸며댄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뒤섞인 가운데 거침없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발견한 것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나 자신이었고, 그것은 어깨 높이의 벙커를 넘어 볼이 그대로 홀 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기쁨과는 또 다른 희열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 사실 골프는 나에게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언제나 고민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티샷을 페어웨이 정중앙에 떨어뜨릴 수 있을까? 비거리를 더 늘려야 한다. 나에게 맞는 퍼터는 어느 것일까? 시나브로 내 머릿속에는 오직 골프를 잘 치는 방법, 스코어를 줄여 승부에서 이기려는 일종의 강박 관념만이 하나 둘씩 쌓여 갔다. 하지만 그러한 ‘의식적인’ 노력과 집착이 내게 남겨 준 것은 퍼터를 집어던져 버리고 싶거나 때로는 클럽을 통째로 연못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 어리석은 충동뿐이었고, 나와 골프 사이의 벽은 점점 더 높아만 갔다.
아무리 연습해도 줄지 않는 핸디캡에 짜증나고, 건강과 친목을 위한 라운드일지라도 언제나 하위권을 맴돌아 속 끓이는 골퍼라면 조용히 시간을 내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골프를 하는 우리 모습을 객관적인 눈, 제3자의 눈으로 관조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제공함은 물론 우리에게 진정으로 골프를 즐길 줄 아는 정신적으로(spiritually)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을 보여 준다. 기독교적 의식으로 무장했을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성과 감정의 균형 유지, 강함과 부드러움의 조화, 욕심을 버리라고 권하는 등 책 전반에 깔린 동양적, 불교적 정서는 우리네 그것과 맞물린다.
박주민 메트라이프생명보험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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