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80년대식 노동운동’ 비판 나선 이용득 한노총長

  • 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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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이 아닌 생산적인 노조 활동을 강조하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그는 이제 노조 활동도 미래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철민 기자
자신의 이익이나 정치적 목적이 아닌 생산적인 노조 활동을 강조하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그는 이제 노조 활동도 미래를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안철민 기자
그는 요즘 탄력을 받았다. 말이나 행동에 거침이 없다. 별명 ‘용팔이’에서 묻어나는 느낌 그대로다. 거침없고 저돌적이다. 한국노총 이용득(53) 위원장 얘기다.

‘무책임한 반대를 위한 반대’ ‘일신의 영달을 위한 노동운동’ 등 최근 그가 일부 노동계에 날린 직격탄은 노동계에 파문을 낳고 있다.

이 위원장은 스스로 싸움꾼이라고 한다. 그는 “싸움(투쟁)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파업과 복역 경력을 들여다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싸움꾼인 그가 요즘 벌이는 싸움이 흥미롭다. 무책임한 노동운동에 맞서고 외국인 투자 유치 등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어용’이라는 한국노총의 옛 이미지가 아직 걸림돌이긴 하지만 그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얘기하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노총 7층에서 이 위원장을 만났다. 연방 걸려오는 휴대전화와 수북한 담배꽁초에서 그의 요즘 생활이 엿보였다.

재계와 함께 외국인 투자 유치, 노사발전재단, 각종 강연과 토론회 등 벌여 놓은 일이 많다. 흡연량이 하루 한 갑 반에서 서너 갑으로 늘었다.

“지금은 21세기인데 1980년대식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구식 이데올로기에 갇힌 채 감옥에 다녀와야 투사가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니 무책임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겁니다.”

이 위원장이 말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은 노동계의 자기반성에서 출발한다. 그 반성의 핵심은 책임감 결여다.

“투쟁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의 억지 투쟁에는 아무런 책임감이 없어요. 회사 탓, 사회 탓, 정부 탓 등 남의 탓만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책임을 지지 않아요.”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대목에서 그는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법안을 얘기했다.

“노동계가 협력해서 당초 정부안을 무력화시켰잖아요. 기간제 근로, 파견근로 등 9개 항목에 걸쳐 노동계의 의견을 관철했는데 한두 항목 때문에 협의안 전체를 거부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이는 민주노총의 비정규직법안 반대와 민주노총에 발목 잡힌 민주노동당을 겨냥한 말이다.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을 찍은 사람들은 진보정당을 원했기 때문이지 민노당의 정책에 동의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민노당의 정책이 너무 편향적이지 않습니까.”

그는 민노당에 대한 비판에서 비정규직법안 통과에 대한 바람을 드러냈다.

한국노총은 올 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천명했다. 혹시 시민단체의 흐름에 따른 무조건 반대는 아닌지 물어보았다.

이 위원장은 한미 FTA에 대해 “무조건 반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너무 급하고 설명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투명하게 국민을 이해시키라는 요구입니다. 그게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요. 또 우리가 반대하면 정부의 협상력을 높여 주는 효과도 있어요.”

현 정부 출범 후 노동부 장관은 권기홍 씨를 시작으로 김대환 씨, 현 이상수 장관 등 세 명이 맡았다. 세 명의 색깔이 판이하다.

그는 “장관의 개인 성향이나 고집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한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노사관계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지적도 했다.

“노사 자율의 틀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어요. 압축성장 시절에는 일방적인 노동정책이 통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정부가 답을 내놓은 식의 노동정책은 노사 모두의 불만을 키우게 됩니다.”

그는 소모적인 노동계의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사의 잠정합의안은 무조건 부결시키는 게 관행으로 굳어 있다”며 “투쟁을 위한 투쟁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깽판’ 치며 매일 싸우는 조직은 약발이 안 먹힌다는 얘기다. 그는 “합리적으로 운동을 하다 투쟁에 나서야 파괴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 등 노동계의 현안에 대해 노사정의 대화 틀에서 최대한 협의한 후에 투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이 위원장은 내년에 시행될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해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강제로 시행되면 대규모 투쟁에 나설 작정이다.

그는 노동계의 미래를 밝게 봤다. 그는 “내년 복수노조 시대가 되면 노동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노조 간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올바른 운동, 합리적 노선을 지향하는 곳에 힘이 실릴 것이란 말이었다.

그는 노동운동의 미래에 대해 ‘투쟁 일변도 대신 서비스’를 제시했다.

“노동단체가 책임 있는 사회의 주체로서 노동자에게 사회보장, 연금, 고용 등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 한노총 추진 노사발전재단

한국노총이 노사 간의 상시 사회적 대화기구로 제안한 가칭 노사발전재단이 노동계와 재계에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노총은 재단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으며,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재단 설립이 노사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되면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 설립 추진의 배경에는 노사 관계의 기본 주체인 노동계와 경영계가 자율적인 협력 관계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여건에서 정부 주도의 노동정책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노사정위원회마저 갈등과 대립만 드러내는 곳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중앙 단위의 노사 대화 기구가 마련돼야 생산적인 사회적 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경총이 제시한 임금인상률 권고안은 2.6%. 노총은 9.6%(비정규직은 19.2%)를 요구하고 있다. 사용자 측의 권고안과 노동자 측의 요구안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

이 같은 문제를 노사발전재단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노총의 주장이다. 노사발전재단에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합리적 인상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임금인상안 제시 등 조사연구 사업 외에도 노사 공동의 직업훈련, 노동교육, 노사관계 컨설팅, 재정복지 등이 재단의 주요 기능으로 꼽힌다.

재단 설립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원이다.

노총의 노사발전재단 추진팀은 “재단이 100여 명의 전문 인력을 유지하려면 매년 100억 원 남짓 소요된다”며 “설립 때 2000억 원의 기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총은 2000억 원 가운데 1000억 원을 정부가 출연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대해 노사 간 자율 기구에 정부가 돈을 대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위원장은 “고용보험료 등 그동안 정부가 관리해 온 자금의 일부를 출연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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