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이후 냉전시대가 시작되자 남한에선 사회주의가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사회주의 연구는 제한적 자료만을 갖고 은밀하게 이뤄졌다. 반공(反共)체제에 익숙했던 남한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막연한 적대감을 가졌을 뿐, 구체적 내용은 알지 못했다. 사회주의가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0년 이후 좌파운동이 유행처럼 번졌고 노무현 정권이 탄생했다. 이 역시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한국의 좌파는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절실한 현실인식에 발을 딛지 않은 좌파운동은 대체로 누가 이론적으로 완벽한지를 놓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야 민생에 이익이 될지, 세계화 정보화 같은 외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은 부차적 문제로 미뤄지기 십상이다. 경직된 이념주의로 가버리는 것이다. 집권 386들이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밀어붙이고, 실패가 드러났는데도 ‘내가 옳다고 확신한다’고 외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좌파 지식인들이 노 정권 지지를 철회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중도(中道) 지식인들이 정권의 무능에 등을 돌리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좌파는 좀 다르다. 이들은 노 정권에 왜 좀 더 좌파적인 정책을 펴지 못하느냐고 꾸짖는다. 그러나 이들이 밑바닥 서민의 고통을 헤아리기 위해 몸을 낮췄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신문법에 ‘시장지배적 사업자’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강요하다시피 했던 일부 좌파가 이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난 뒤 사과나 반성을 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다. 화석화된 좌파,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좌파는 점점 고립될 뿐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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