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를 시작하면서 어두운 표정에 한숨을 지으며 “속이 아프다”고 말해 장관들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런 유형의 속앓이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에 대해 임기 말 ‘레임 덕(권력 누수)’ 현상을 염두에 둔 언급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유력하다. 노 대통령은 한명숙 국무총리가 주재한 지난번 국무회의 때 차관을 대리로 참석시킨 장관이 많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이 밖에도 불안한 속내를 최근 여러 차례 드러냈다. 4월 18일에는 여야당 지도부와 함께한 자리에서 경제문제를 거론하며 “불안해서 잠이 잘 안 온다”고 했고, 그 사흘 뒤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나름대로 뭐가 안 돼서 답답한 마음이 있고 약간은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5월 3일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잠 못 이루는 청와대의 밤도 있다”고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국정(國政)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의 무게를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그런 대통령을 안쓰러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속병이 나쁜 것만은 아닐 듯하다. 일종의 스트레스이기도 할 속병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오히려 반전(反轉)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4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5·31지방선거는 뭔가 판을 좀 바꿔 달라는 국민의 명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간접적으로 제시했다. 국정 난맥 때문에 많은 국민이 대통령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속병을 앓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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