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속앓이

  • 입력 2006년 7월 6일 02시 59분


‘속병’이란 말은 여러 가지로 쓰인다. 몸속의 병을 통칭하거나 위장병만을 뜻하기도 하고 마음의 아픔을 이르기도 한다. 이 중에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해 생기는 마음의 심한 아픔을 일컫는 경우가 가장 많다. ‘속앓이’는 속병의 잘못된 표현이고, 속병과 비슷한 증상에 ‘가슴앓이’ ‘화병(火病)’ 등이 있다. 이런 증세는 주로 마음에서 오는 만큼 한의학에서는 약물치료보다 마음을 잘 다스려 예방하는 데 힘쓰도록 한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것이 한국이다’에서 이어령 선생은 “한국어는 논리보다 감성이나 감정 쪽으로 발달해 왔다”면서 “그래서 시적(詩的)인 국민이고, 가슴앓이를 표현하는 말도 실로 천 가닥 만 가닥이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제 국무회의를 시작하면서 어두운 표정에 한숨을 지으며 “속이 아프다”고 말해 장관들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이런 유형의 속앓이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발언에 대해 임기 말 ‘레임 덕(권력 누수)’ 현상을 염두에 둔 언급이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유력하다. 노 대통령은 한명숙 국무총리가 주재한 지난번 국무회의 때 차관을 대리로 참석시킨 장관이 많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노 대통령은 이 밖에도 불안한 속내를 최근 여러 차례 드러냈다. 4월 18일에는 여야당 지도부와 함께한 자리에서 경제문제를 거론하며 “불안해서 잠이 잘 안 온다”고 했고, 그 사흘 뒤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나 “나름대로 뭐가 안 돼서 답답한 마음이 있고 약간은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 5월 3일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잠 못 이루는 청와대의 밤도 있다”고 하소연하듯이 말했다. 국정(國政)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의 무게를 실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그런 대통령을 안쓰러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속병이 나쁜 것만은 아닐 듯하다. 일종의 스트레스이기도 할 속병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 긍정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오히려 반전(反轉)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도 4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5·31지방선거는 뭔가 판을 좀 바꿔 달라는 국민의 명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간접적으로 제시했다. 국정 난맥 때문에 많은 국민이 대통령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속병을 앓고 있는 세상이 아닌가.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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