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추구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 시장에서 경기 규칙의 공정성을 해치고 자원 배분이 왜곡된다.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는 비용보다 우호적인 규제 환경을 매수하는 비용이 적게 들 경우 생산자들은 지대추구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 것이다.
이익집단의 힘이 커지면 강력한 분배연합(分配聯合)이 되어 정부를 상대로 압력을 행사해 더 많은 지대를 얻어 내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그룹은 크게 나누어 지대추구 그룹과 반미·반세계화 세력 두 갈래이다. 지대추구 그룹의 주력부대는 민주노총, 농민단체, 시민단체, 영화인이다.
민주노총은 거대한 지대추구 집단으로 결속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동해방’이라는 거창한 구호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독점적 지대(고임금)와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들은 자유무역에 따라오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지대추구 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10년 동안 농촌에는 100조 원이 넘는 돈이 투하됐고 2004년부터 10년 동안 비슷한 규모의 돈이 또 농촌에 들어간다.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 부었지만 국제 시세 대비 국내 쌀값은 더 올라갔다. 사회적 약자인 농민을 돕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보조금과 보호막이 두꺼워질수록 건전한 생산자보다는 지대추구자들이 농촌과 농민운동을 주도하게 된다.
영화인들도 국내 스크린에 강력한 보호막을 계속 쳐 달라는 지대추구 집단이 됐다.
반미·반세계화 그룹은 지대추구 집단은 아니지만 반FTA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반미·반세계화 그룹에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이념적으로 동조했던 이른바 진보 성향의 교수가 많다. 대통령비서실에 몸담았던 이정우 정태인 씨도 앞장을 선다. 주류(主流) 경제학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일부 언론은 남미에서 나타난 FTA의 부정적인 측면을 확대 과장 보도하고 있다. 경제 전체가 병들어 생긴 현상을 FTA 탓으로 돌려놓고 한미 FTA가 체결돼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시킨다.
좌파의 눈에는 노 정부가 오른쪽으로 너무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한미 FTA는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으로 먹고사느냐의 문제이다. 전 세계에서 발효 중인 FTA는 197개이고 세계 교역량의 50% 이상이 FTA 체결국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은 대외교역(수출+수입)이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으로서 시기와 전략의 문제일 뿐 미국 중국 일본과의 FTA를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다.
누가 뭐래도 ‘최대의 지대추구자’는 북의 선군(先軍)으로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니 그 대가로 쌀 50만 t을 달라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다. 미사일 7발을 쏘는 비용이 쌀 50만 t 을 생산하는 비용보다 적게 든다면 북한은 계속해 미곡 생산을 위한 농업정책이나 농법 개선보다는 지대추구를 위한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릴 것이다.
12일 비 오는 도심 교통을 8시간 동안 마비시킨 한미 FTA 반대 시위 주도자들의 면면은 경기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미군기지 저지 시위에 참가했던 인사들과 상당 부분 겹친다. 좌파 시민단체들은 남쪽에서 지대(공익단체 보조금)를 받아 북쪽의 지대추구 활동을 지원한다.
분배연합이 집단 떼쓰기를 통해 가져가는 지대의 몫이 커지다 보면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불건전한 지대추구는 부동산 투기보다 더 사악하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황호택 논설위원이 신동아에서 만난 '생각의 리더 10인'이 한 권의 책으로 묶어졌습니다.
가수 조용필, 탤런트 최진실, 대법원장 이용훈, 연극인 윤석화, 법무부 장관 천정배, 만화가 허영만, 한승헌 변호사, 작가 김주영, 신용하 백범학술원 원장,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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