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금 부담을 견디지 못한 건설업체들이 아파트 할인 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분양가보다 10∼20% 낮은 가격으로 암암리에 아파트를 내놓거나 중도금을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등 특별 조건을 내걸고 입주자를 모집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나 볼 수 있었던 ‘아파트 땡처리 시장’이 다시 서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인터넷에는 건설업체와 투자자 사이에 미분양 아파트 거래를 알선해 주는 ‘땡처리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원래 ‘땡처리’란 의류의 유통과정에서 생겨난 속어다. 백화점과 할인매장을 거치면서 여러 번 할인해도 팔리지 않는 재고 의류를 보관비용을 털어 내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서 정상 가격의 10% 안팎에 팔아 치우는 것을 말한다. ‘눈물의 폭탄세일’ ‘창고비만 내세요’ ‘우리 사장님이 미쳤어요’ 등 호객용 광고 문구가 나붙은 이런 매장은 주머니가 가벼운 알뜰파 주부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도 하다.
▷아파트 땡처리 시장의 등장은 부동산 불경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땡처리를 한다는 것은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극심하다는 뜻이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부도(不渡)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건설업체발(發) ‘연말 대란설’이 확인될까 두렵다. 이 같은 미분양 주택 적체는 그렇지 않아도 위축된 지방경제를 더 짓누른다. 정부가 서울 강남 아파트 값을 잡는다며 휘두른 중(重)과세, 대출 제한, 재건축 규제 등의 칼에 먼저 맞아 쓰러지고 있는 것이 지방 주택시장인 것이다. ‘초정밀 유도탄’ 같은 부동산 정책이라고 아직도 자랑할 텐가.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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