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글은 정약용이 제자 황상에게 준 한마디 가르침이다. 제자는 온 생애에 걸쳐 스승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이들의 곡절한 인연에 마음이 시큰하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이 책의 제목에 썩 어울리는 두 사람이다.
요즘은 ‘마니아’들의 시대다. 세상이 복잡하고 다원화되다 보니 사람들이 미치는 영역도 천차만별이다. 마니아와 전문가는 다르다. 전문가는 그것으로 밥 먹고 살지만, 마니아는 즐긴다. 그것도 그냥 즐기는 게 아니라 미쳐야 마니아다. 좋게 얘기하면 열정이지만 그것으로는 좀 모자란다. 광(狂)이고 벽(癖)이어야 한다. 그런 마니아가 오늘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우리 한문학의 명문들을 맛깔스럽게 소개해온 저자가 숨어있던 조선의 마니아들을 발굴했다. 무언가에 미쳤기에(狂) 비로소 어떤 경지에 미친(及) 사람들 이야기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마니아가 아니다. 오늘의 마니아들은 결코 세상과 대결하지는 않는다. 단지 세상 한구석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들락거리며 즐길 뿐이다. 그러나 이 책 속의 인물들은 온 생애를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와 정면으로 대결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세상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천재들이기도 하고, 아니면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린 기인들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김영 서문장 노긍 등 생경한 인물도 있지만, 허균을 비롯해 이른바 교과서에서 실학자라고 배운 이덕무 홍대용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등 쟁쟁한 인물도 있다. 그런데 이들의 예화가 매우 낯설다. 그동안 무얼 배운 것일까? 껍데기 이름만 알고, 정작 그들의 치열한 삶은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세상을 울릴 재주와 학문을 갖고서도 신분의 질곡과 처참한 궁핍 속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뜻을 굽히지 않은 시대의 아웃사이더. 이런 삶이 과연 ‘불광불급’인가? 혹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아닌가?
이 책의 2부에 등장하는 ‘맛난 만남’을 이룬 사람들의 따스한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울린다. 그들이 지나치기(過)보다 그들을 용납하기에 세상의 그릇이 작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의 3부는 읽는 이의 사색을 요구한다. 읽다 보면 내면의 깨우침이 적지 않다. 잔잔한 일상에서 세상과 만물의 깊이를 읽어내는 그들의 번뜩이는 통찰력이 감히 부러워진다.
임기환 서울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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