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전 개화기(1876∼1910)의 시대적 과제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막고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위정자들은 열강 쟁패의 소용돌이 속에서 친일파·친미파·친청파·친러파로 이합집산하며 외세에 휘둘렸다. 그 결과 우리는 국민국가 세우기를 놓고 벌인 시간의 경쟁에 뒤처져 한때 문화적 열등자로 낮추어 보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참담한 좌절의 역사를 쓰고 말았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북한 미사일 문제, 독도 영유권 분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동북공정을 보라. 주위의 강자들이 다시 한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금, 보수와 진보, 친미와 반미, 민족과 반민족, 종속과 자주의 이분법은 한 세기 전 개화와 수구, 친일과 반일의 분열상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오늘 깨어 있으려 하는 이들을 고뇌하게 하는 공통의 화두는 다시 돌아온 약육강식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가 살아남는가이다. 어떤 이는 민족과 국가를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 만들기를 그 해법으로 내세우며, 다른 이는 반민족행위자 처벌과 같은 부끄러운 과거사 정리와 남북이 하나 되는 민족공동체의 실현을 통한 민족 바로 세우기가 급선무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한 세기 전 극명하게 다른 길을 걸었던 김옥균과 홍종우의 엇갈린 삶을 성찰해 미래를 비추는 사가(史家)의 소임을 다하려 한다.
그의 눈에 비친 김옥균은 외세에 기댄 갑신정변이 실패한 뒤 망명지 일본에서 한중일 삼국이 힘을 합쳐 서구 열강의 침입에 맞서자는 ‘삼화(三和)주의’를 소리 높여 외친 조선 최초의 동아시아 공동체주의자였다. 반면 홍종우는 일신의 영달을 위한 제물로 김옥균을 죽인 파렴치범이나 수구 정객이 아니라 조국을 외세에 판 역적을 쏜 충군 애국지사이자, 고종을 보좌해 외세에 기대지 않는 자주적 근대화를 추동한 제3의 개화 정객이었다.
시민사회와 산업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오늘 그 발전의 뿌리를 놓고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평행선을 달리고, 민족 지키기와 민족 넘어서기가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학계의 최전선이다.
저자가 김옥균과 홍종우 두 사람을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려 얻어낸 교훈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이 웅변하듯 그는 사해동포주의자 김옥균보다 군주에 충성을 다한 원초적 민족주의자(proto-nationalist) 홍종우의 삶에서 해답을 찾는다. 남의 힘에 기대지 않는 자주와 독립의 길을 모색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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