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주한 이스라엘대사관을 찾은 기자는 몇 차례나 사전 신분확인 절차를 거쳤는데도 불구하고 안경집 속까지 샅샅이 뒤지는 보안 검색을 받아야 했다. 작년 재작년 미국 워싱턴 한복판의 미 행정부 청사에 들어갈 때가 떠올랐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결국 보안 요원은 물론 이갈 카스피 대사에게까지 “좀 심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를 던지고야 말았다.
불과 몇 시간 전 찾아간 용산구 동빙고동 주한 레바논대사관의 분위기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카스피 대사와의 만남은 보안 유리문을 세 번이나 통과하고 나서야 이뤄졌다.
그의 눈은 빨갛게 충혈이 돼 있었다. 첫 부임지인 한국에서의 1년 중 최근 2주만큼 바빴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깊은 우려 속에 벌써 16일째를 맞고 있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의 교전사태 때문이었다. 특히 세계 언론이 ‘교전의 원인’보다 레바논 민간인 희생자 보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분노하고 있는 듯했다.
“(레바논의) 민간인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전쟁의 대가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이스라엘)는 공기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말이냐.” 대사의 언어는 매우 거칠어져 있었다.
―하지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이 국제법상의 ‘비례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이 너무 과도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닌가.
“비례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각자의 눈으로 해석할 뿐이다. 얼마 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실제 피해는 아마 바다 속 물고기 몇 마리가 죽은 것뿐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일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북한의 행동을 ‘위험한 무력 사용’의 예로 간주하지 않았나. 마찬가지다. 헤즈볼라는 우리에게 로켓탄을 겨냥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의 눈’으로 헤즈볼라를 보는 것이다.”
―오전에 후세인 라말 레바논대사를 만났는데 그는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레바논 국경을 침범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헤즈볼라가 체포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다.” 카스피 대사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그러면서 그는 주권국가론을 역설했다. “(레바논이 주권국가가 되려면) 하나의 지도자, 하나의 군대(One man, one gun)를 갖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레바논이 헤즈볼라라고 하는 ‘군대 외의 군대’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얘기다.
곧이어 그의 입에서 “이번 사태로 관계가 더 악화될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라말 대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비록 서로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그래도 주한 외교사절단 행사에는 함께 참석해 왔는데 그나마 사이가 더 나빠질 것 같다는 뜻이다.
라말 대사도 그랬다.
그는 “이번 전쟁은 레바논 민간인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목표라고 하지만 실제 헤즈볼라 희생자는 5, 6명에 불과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레바논이 2004년 9월 통과된 유엔 안보리 결의문 1559호를 제대로 이행했다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안보리 결의문 1559호는 △레바논에서의 외국군 철수 △공정하고 자유로운 총선 실시 △모든 민병대의 무장해제를 요구).
“헤즈볼라는 안보리 결의문이 해체를 요구한 무장 민병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저항세력이다.” 테러단체가 아니라 분명한 정치세력이라는 말이다.
두 대사가 유일하게 같은 견해를 보인 대목은 ‘현 상황이 오래갈 수도 없고, 오래가선 안 된다’는 점뿐이었다. 총성만 들리지 않았지 서울 외교가의 두 나라도 중동 현지와 다를 게 없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라말 대사가 갑자기 기자에게 “중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고는 이런 얘기를 했다.
“이른바 미국이 이야기하는 ‘대중동(Big Middle East)’은 ‘중동(中東)’이 아니다. ‘이슬람 국가’일 뿐이다. 우리는 이집트 알제리 요르단 시리아처럼 우리와 같은 과거, 언어, 문화를 공유한 국가들을 중동이라 부른다.”
라말 대사의 ‘중동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중동의 외딴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이 인터뷰 기사 취재에는 윤성의(서울대 외교학과 4년), 이태호(서울시립대 법학과 3년) 본보 인턴기자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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