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이든 아니든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든다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급조된 대책이라도 좋으니 제발 경기를 살려달라는 이도 적지 않다. 이런 사정을 눈치챈 듯 경제 관료들의 발언이 자못 적극적이다. 갑자기 소신을 바꾸기라도 한 것처럼 일자리창출과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발언대로 될까. 과연 실행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미심쩍은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구체적인 대책보다는 한건주의식 홍보용 구호에 그치거나 다른 기관이나 기업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에 책임 전가
"코트라나 경제자유구역 등이 외국인 투자유치를 전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 지방자치단체도 발로 뛰며 기업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틀을 바꿔야 한다"는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그중의 하나다. 한국 기업의 투자마저 외국에 빼앗기는 정부가 그 책임을 지방정부 탓으로 돌리는 듯하다. 삼성전자의 합작 반도체 공장을 유치한 싱가포르 정부가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우리 정부의 무능함을 지적할 수 밖에 없다.
수도권에 공장총량규제를 만들어 기업투자를 막아온 정부가 지방정부에게 투자유치 노력을 당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 환경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수도권 규제와 출자총액제한제는 지엽말단적인 문제"라고 한 권 부총리가 '획기적인 규제완화'를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야성적인 충동(animal spirit)'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기업에게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에서도 책임회피 냄새가 난다. 기업인의 위험회피 경향도 투자 부진의 한가지 이유지만 성장보다는 분배를, 투자보다는 노조의 복지를 강조한 정부 정책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기업인들에게 "왜 투자하지 않느냐"고 따지기에는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독재시대에도 기업하고 투자하지 않았느냐'는 '노무현식 화법'이 연상된다.
'한국에는 왜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의 얘기도 금융인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금융회사들이 세계적으로 커나갈 수 없도록 온갖 규제를 만들어 손발을 묶은 당사자가 바로 금융감독원이라는 사실은 금융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발뺌 발언에 열받는 국민과 기업인
요즘들어 경제 관료들의 어법이 바뀌었다. 국민과 기업인의 고충을 헤아리기 보다는 정부와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 듯한 내용이 많아졌다. 외환위기 직전 여론을 무시하고 고집을 부리던 일부 경제관료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발언은 우리 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정부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발뺌과 책임전가에는 쓸모가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과 기업인들을 열받게 만들 뿐이다.
이들 관료들도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런 화법에 능숙하지 않았던 인물들이다. 혹시 지난 주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에게 국회 '맞짱답변' 요령을 지도한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배운 것일까.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장관들의 발언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북한 목조르기라도 하자는 말인가" "미국은 오류가 일절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느냐"는 식으로 경제정책을 이끌어간다면 시장은 요동을 치고 경제에 주름살만 더하게 될 뿐이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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