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은 밝혀졌는가? 그렇다. 이 책을 통해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일본 정부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자행한 국가 범죄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억겁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한 이 사건은 일본 정부가 사건 이후 관련 자료를 송두리째 파기해 100여 년간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저자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찾아낸 결정적인 자료가 말해 주듯, 역사에서 이 문제는 이제 완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은 정부의 개입 사실을 철저히 부인한 채 미우라 공사·대원군 주모설 등을 주장해 왔지만 더는 발뺌할 수 없게 되었다.
위의 서한은 예사로운 편지가 아니다.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무서운 자료’다. 편지를 쓴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는 일본 육군의 창설자이자 총리를 지낸 사람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맞먹는 일본 정계의 실세다. 편지에 언급된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이토 내각의 외상과 내상을 역임했다. 그런 그가 한국 문제에 관한 ‘전결권’을 갖고 주한공사를 자청하여 부임했다. 이들은 모두 메이지 유신의 공신들이자 일왕의 자문에 응해 막후에서 국사를 좌우한 ‘겐로(元老)’들이었다.
저자는 이들이 주모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애당초 개인 차원의 사건일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당시 한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도쿄에 와 있던 이노우에는 이 편지가 외상에게 전달된 직후인 7월 11일, 외교의 문외한인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를 자신의 후임으로 천거했다. 그러므로 실행자 미우라 공사는 주범이 아니라 종범일 뿐이다. 그는 일본 정부의 계획에 따라 주한공사로 부임한 지 37일 만인 10월 8일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반도를 둘러싼 러-일의 대결이라는, 말하자면 일본의 국익이 걸린 중대사였다. 정부 당국이 아닌 어느 특정 개인이 결정할 문제가 처음부터 아니었다.
이 책은 일본 정계 실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날짜별로 추적해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를 박진감 있고 읽기 쉽게 재구성했다. 대중을 위한 책으로 쓰였지만 이 책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한 훌륭한 학술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성황후의 정치적 안목을 동시대의 러-일 실세들의 정책과 비교하는 흥미진진한 대목도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청일전쟁 이후 러-일의 대결 상황 속에서 명성황후가 왜 희생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사건이 왜 단순한 개인 차원의 사건이 아닌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석화정 세종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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