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전 차관은 "청와대에서 아리랑TV 부사장과 한국영상자료원장 자리에 너무 '급'이 안 되는 사람들을 쓰라고 인사 청탁을 해왔다"고 우리 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자신한테 직접 청탁을 한 사람까지 밝혔습니다. 이백만 홍보수석비서관과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입니다. 이들에게 여러 차례 인사 압력을 받고 "이런 일을 더는 하지 말든가, 차라리 나를 자르라"고 했더니, 정말 잘랐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백만 홍보수석은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이 고등학교 교장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학총장"이라는 식으로 '노(盧)비어천가'를 불러온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신문과 조선일보에 대해 "마약의 해악성과 심각성을 연상시킨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386운동권 출신인 양정철 비서관은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거부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향해서 "당신의 대안은 뭐냐"고 공개 비난한 적도 있습니다.
[3분논평/김순덕]'인사 청탁하면 패가망신 시킨다더니…' 동영상보기
현 정부의 깃대를 높이 쳐들고, 현 정부의 정책과 이념에 대해 '마이크' 역할을 해온 두 사람이 이번 사건의 핵심 인사라는 점은 참으로 상징적입니다. 가장 도덕적이고, 가장 개혁적이라고 자처해온 정권의 핵심에서 공직을 쌈짓돈이라도 되는 양 나눠 갖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차라리 뇌물은 몇 차례 돈이 오가는 단순한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급'이 안 되는 사람들이 공직에 앉아서 엉터리 정책을 만들어내고,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가는 것은 더 큰 부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청와대 측은 "유 전 차관이 신문법 관련 업무를 고의로 회피했다"고 경질 사유를 밝혔지만,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유 전 차관이 공직기강 조사까지 받았는데 여기서도 인사 청탁 거절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인사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할 것"이라고 경고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러고도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개인적 인연과 지연, 학연에 따라 '코드 인사'를 해왔습니다. 얼마 전 물러난 김병준 교육부총리도 그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이러니 대통령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대통령처럼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하면서 '패거리 인사'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번 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입니다. 현 정부의 파행 인사와 난맥상이 이번 사건에 응축돼 있습니다. 공직자들이 "이제 정부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접었다"고 할 정도입니다. 공무원들이 동요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옵니다. 국회라도 나서서 진상을 밝혀내고,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가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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