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세가 강한 IGU에서 어떻게 사무총장에 당선됐는가.
“2000년 서울에서 4년마다 열리는 국제지리학대회(IGC)가 열렸다. 156개 회원국에서 3400명의 학자가 참석했는데 내가 조직위 사무총장을 맡아 대회 준비를 총괄했다. IGC의 조직위원장은 개최국의 국가원수가 맡을 정도로 큰 대회다. 당시 집행부는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 그것도 지리학의 주변부에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서울대회는 ‘다시는 재현하기 어려운 성공적인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나를 부회장으로 선임한 뒤 사무총장으로 선출했다. IGU의 회장은 기구를 대외적으로 대표하고, 사무총장은 실질적 운영을 맡는다.”
―IGU에서도 국가 간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가.
“미국이 주도하면 유럽이 견제하고, 영미나 독일이 앞서가면 프랑스가 견제한다. 이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영어를 할 줄 아는 나에 대해 각 나라가 ‘타협이 가능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것 같다.”
―한국인 사무총장의 선출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금은 총칼이나 자본이 아니라 과학 기술 지식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러나 우리의 학문과 사상의 서구의존도는 심각한 지경이다. 학문세계에서의 민주화와 자주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연구 조직이나 학회에서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제국주의와 연관되어 있던 지리학계에 비유럽 학자가 지휘봉을 갖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의 운영 구상은….
“구미 중심의 지리학을 세계의 지리학으로 민주화시키는 데 기여하겠다. 구체적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젊은 지리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좀 더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 또 관념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지리학을 일상으로 다시 끌어들이고 분단국가 출신의 사무총장으로 분단 해결을 위한 지리학의 역할을 모색하겠다.”
―국내에서는 국제학술기구의 수장에 대한 지원 규정이 전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상 사무국에 상근을 해야 하는데 서울대에 관계규정이 없어 앞으로 정부, 대학과 절충해야 한다. 우선 서울대에서 사무국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하고, 강의도 대학원 1개 강좌 정도만 맡을 수 있다면 훨씬 자유롭게 사무총장 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해외출장도 물론 자유로워야 한다. 정부에서는 사무국이 원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IGU 사무국은 사무총장이 속한 국가로 이동한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있는 사무국이 내년부터 한국으로 온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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