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태동]영화 ‘괴물’과 쏠림현상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1분


영화 ‘괴물’이 개봉한 지 불과 20일 만에 우리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에 해당하는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이 영화가 이렇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할리우드영화 ‘쥐라기 공원’처럼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포와 적개심 속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괴물의 출현 때문이다.

제작자들은 한국영화 흥행기록 경신이 예상되는 영화 ‘괴물’이 일으키는 ‘바람’에 대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특정 영화에 대한 국민의 지나친 ‘쏠림 현상’을 두고 적지 않게 우려한다.

실제로 ‘괴물’은 ‘왕의 남자’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작품성을 지닌 흥행작과 비교할 때, 일부 젊은층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지적으로 성숙한 중장년층에게는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가족애와 환경문제에 관한 것이지만 괴물의 출현이라는 가상현실을 통해 ‘국수적인 민족주의’를 자극해서 위기 상황을 조장하고 반미를 선동하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괴물’의 출현에 엄청나게 많은 관객이 몰려드는 데서 볼 수 있듯이 사회 전반적으로 지나친 ‘쏠림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쏠림 현상’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침착하고 성숙한 태도와는 거리가 먼 이성이 마비된 군중심리에서 비롯된다.

우리 민족은 생명력이 넘쳐흐르고 끈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쉽게 뜨거워지고 곧바로 식어 버리는 ‘냄비 현상’도 있어 군중심리의 덫에 걸리기 쉽다.

월드컵의 경우를 보자. 그 당시 아무도 깃발을 높이 들지 않았지만 수백만 명의 인파가 거리와 광장으로 나와 남미(南美)에서처럼 열광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그들이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지적했던 것과 같이 ‘개인적인 자제력과 독립성을 박탈하는 퇴행적인 감정적 유대’인 집단 심리의 덫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였던 것은 축구 경기도 경기려니와 군중심리 속에 깊숙이 흐르는 ‘붉은악마’라는 원형적인 코드 때문이기도 했다. 통념적으로 붉은악마는 우리가 멀리 해야만 하는 악령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근원적인 ‘집단 무의식’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16대 대통령 선거는 물론 탄핵정국 속에서 치러진 17대 총선에서도 나타나 우리나라의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에 어려움을 주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괴물’의 제작자들이 기록적인 관객을 동원해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것을 두고 한국영화의 승리라고 자랑할 것만은 못된다. 한편에서는 원초적 본능인 집단 무의식을 자극하는 내용과 마케팅 전략으로 무장한 ‘괴물’을 보기 위해 620개 스크린 앞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적인 거장 김기덕 감독이 영화 ‘시간’을 끝으로 앞으로는 그의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균형을 잃고 ‘쏠림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가를 여실히 나타내 주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이 우리를 다이내믹한 민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찬사도 되겠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미성숙하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분열과 전복(顚覆)을 야기하는 집단 심리에서 나온 ‘쏠림 현상’이 아니라, 창조적인 긴장 속에서 변증법적 발전을 가져오는 균형과 아름다운 조화이다.

이태동 문학평론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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