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와 북한은 외형상 닮은꼴이다.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나라에 많은 한국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과의 유사성 때문이다. 장기 집권자 카스트로의 유고(有故)는 북한 김일성 부자의 세습 지배 때문에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최고 권력자에게 변고가 닥치면 독재국가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쿠바의 사례는 북한의 장래를 제대로 예측하게 하는 절호의 학습 기회다. 쿠바가 겪고 있는 혼란 속에서 머지않아 북한에 닥칠 위기를 그려 보고 필요한 대비를 해야 한다.
공산혁명으로 집권해 47년간 철권통치를 해 온 카스트로도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 혁명가의 육체와 정신도 팔십 고령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수술대 위에 누워야 했고 잠정적이라고는 하지만 동생에게 권력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카스트로가 발버둥을 친다 해도 가시권에 들어온 ‘인생의 종착역’은 점점 다가온다.
북한의 지도자에게도 세월은 마찬가지 무게로 다가온다. 올해 64세인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한 해 한 해 기력이 떨어지는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세습 지배에 비하면 그에게 남아 있는 세월은 결코 길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 남자의 평균수명은 65세에 불과하다. 쿠바에 ‘포스트 카스트로’가 다가왔듯 북한에 ‘포스트 김정일’이 도래하는 건 필연이다.
권력 교체기에 접어든 쿠바의 오늘은 어떤가. 당장은 큰 혼란이 없는 듯하다. 반체제 인사들이 자유롭게 떠드는 나라는 아니지만 외형상으로는 특별한 동요가 없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외세(外勢)’도 “쿠바의 장래는 쿠바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며 추이를 지켜볼 뿐이다.
쿠바에는 북한이 갖추지 못한 내면(內面)이 있기 때문이다. 1100만 명의 쿠바 국민은 끼니 걱정을 하지 않는다. 2인자 라울이 1990년대 초에 “콩이 대포보다 중요하다”며 발상의 전환을 한 결과다. 성공적인 유기농업 덕분에 식량 자급률은 90%를 넘는다. 5만 명의 정규군은 권력 유지의 도구인 동시에 호텔과 리조트를 경영하며 외국 관광객 유치에 힘써 한 해 20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돈줄이다. 주로 미국에 살고 있는 재외 쿠바인들도 매년 20억 달러를 고국으로 보낸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원유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오로지 카스트로 치하에서만 살아온 대부분의 쿠바 국민으로서는 ‘또 다른 혁명’을 해야 할 급박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외세가 개입할 여지도 없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확실한 후계자가 없는 데다 주민들은 외국의 지원이 없으면 곧바로 기근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허덕인다. 권력 유지 기반인 군은 ‘핵과 미사일 강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힘의 원천인 최고 권력자에게 변고가 닥친다면 불만이 터지고 동요가 발생할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이 요동치면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팔짱 낀 채 구경만 하리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관리’가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자력으로 생존하는 북한, 외부를 위협하지 않는 북한을 만들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 북한을 최소한 쿠바 수준으로 유도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면 한다. 쿠바 사태에서 배울 교훈은 남도 북도 크게 깨우치는 것이다.
방형남 편집국 부국장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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