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논평/이재호]노 대통령의 패권주의 발언은 긁어 부스럼

  • 입력 2006년 8월 17일 15시 30분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협력 질서를 위협하는 패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불행하게도 동북아에는 지금도 과거의 불안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전에도 패권주의에 대한걱정을 참 많이 했습니다. 패권주의란 '한 지역에서 어떤 나라가 우월한 힘을 이용해 그 지역의 다른 국가를 자신의 지배, 또는 영향력 안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곧 '헤게모니를 잡는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이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중국과 일본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급속히 성장하는 중국과 군사대국화 하는 일본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그러했던 것처럼 동북아에서 패권을 다투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뒤에는 중국의 부상을 내심 원치 않는 미국이 있다고 치면 중국 대 미일(美日)의 대결 구도로 갈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의 인식과 발언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동북아의 미래를 너무 결정론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어차피 대결구도로 갈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현실주의(realism) 국제정치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전망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국제정치는 별 소리를 해도 '패권 추구의 정치'이므로 결국 중국과 美日이 맞서는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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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현실주의적 관측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들은 1991년 구 소련이 붕괴됐을 때 세계는 앞으로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에 의한 다자(多者)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만 결과는 어떻습니까. 미국에 의한 단극(單極) 지배체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국제정치에서 예상은 이처럼 빗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북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주의(idealism) 국제정치학자들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오히려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통령이 굳이 동북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패권주의 타령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패권주의'라는 말은 해당국가에 대한 '욕'입니다. 힘으로 이웃을 지배하려드는 '무뢰배 국가'라는 뜻입니다. 설령 그런 야심을 가진 국가가 있다고 해도 눈앞에서 노골적으로 "너 패권국가지"라고 한다면 기분 좋을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패권주의가 걱정되면 속으로 대비하면 될 일입니다. 대통령도 말했듯이 자주국방을 강화해서 나라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이웃집 힘 센 사람의 도움도 받아야겠지요. 동북아의 미래를 '패권시대'로 미리 단정하고 해당국들을 비난하는 것은 슬기롭지 못합니다. 말이 씨 된다고 동북아가 정말 패권주의로 가면 어떻게 하렵니까. 불필요한 단정적 언사로 우리 처지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3분 논평이었습니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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