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남형두]사서 이름 붙인 도서관을 기다리며

  • 입력 2006년 8월 30일 03시 04분


17대 국회 개원 후 언론에서는 단신으로 처리됐으나 우리 지식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사건이 국회에서 발생했다. 국회도서관장을 선출하는 자리에서 여당의 초선 의원이 여야의 묵계를 깨고 내정된 후보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일이다. 본래 야당 몫이었던 모양인데 초선 의원의 이의 제기는 그 이유를 따지기에 앞서 필자의 눈에는 참신하게 비쳤다. 그러나 내정자가 그대로 도서관장이 되었던 것으로 볼 때, 찻잔 속의 태풍이었던 것 같다.

천하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는 자신의 아버지가 졸업한 미국의 어느 로스쿨에 건립 비용으로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내세운 조건은 단 한 가지, 로스쿨 건물의 이름을 아버지 이름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200억 원을 기부 받으면서 건물 이름 하나쯤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는가. 로스쿨은 ‘윌리엄 게이츠 홀’로 바뀌었다. 그런데 로스쿨은 법대 건물 이름을 변경하면서도 법대 도서관의 이름만큼은 고수했다. ‘갈라거 라이브러리’. 37년간 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지대한 공을 세운 사서의 이름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저작권법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법학 도서관의 사서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물론 단 한 명도 대답하지 못했다. 사전에 연락받은 법학 도서관 사서를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앞으로 나오게 했다. 저작권법의 한 테마인 도서관의 중요성을 설파한 후인지라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서도 박수소리에 짐짓 놀란 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산업이 발달하려면 도로와 항만, 통신, 전력 등 사회기반시설(인프라)이 잘 닦여 있어야 한다. 인프라만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물류의 소통이 원활한 것은 아니다.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 길이 넓고 교통량이 적을 때는 신호를 위반해도 크게 위험하거나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교통량이 많아지게 되면 신호를 잘 지켜야 인프라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학문 발전의 인프라는 무엇일까? 필자는 도서관 또는 문헌정보학이라고 생각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쓸모없는 시대가 이미 왔거나 곧 올 것이다. 학문 발전의 인프라는 필요한 정보를 수요자에게 정확하고 빠르게 공급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세계 제일의 초고속 인터넷망을 보유하고 있으니 길은 잘 뚫려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길을 질주하는 폭주족이 많은 데 있다. 인터넷에서 너무도 쉽게 다른 사람의 노작을 ‘컷 앤드 페이스트(cut and paste·잘라 붙이기)’하는데, 더 큰 문제는 이런 행위에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김병준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사태로 인해 표절 시비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지금도 표절의 기준이라든지 인용법에 대한 통일규칙이 만들어지기는커녕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주 서울 강남의 코엑스에서 세계도서관정보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 150개국에서 5000여 명이 모인 ‘도서관의 올림픽’ 행사는 바다이야기에 빠져 있던 국내 언론으로부터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학문의 소통을 위한 학문’인 문헌정보학과 그 질서체계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는 저작권법학은 빛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분야임에 틀림없다. 이번 행사의 결실로 통일 인용법 제정을 위한 첫 삽이라도 뜨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는 언제쯤 중앙도서관, 시립도서관과 같은 딱딱한 이름 대신에 두꺼운 안경에 머리칼은 하얗게 센, 평생을 책 먼지를 뒤집어쓰고 살아온 사서의 이름을 딴 도서관을 가질 수 있을까?

남형두 연세대 교수·법학·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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