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대통령이나 권력 실세(實勢)의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야당 지도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써 넣은 손목시계를 돌리곤 했다. 그런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면서 유력자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는 양 허세를 부린 사람도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02년 4월 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노 후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가 기억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총재님이 1989년에 일본 다녀오시면서 사다 주신 겁니다”라고 말했다. YS 덕 좀 보려고 과거 인연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알려진 뒤 노 후보는 지역감정을 의식한 구태(舊態)정치를 한다는 역풍을 맞아 한동안 고전했다.
▷‘YS 시계’가 현 정권에 교훈이 되지도 못한 모양이다. 개혁의 전도사를 자처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취임 후 자신의 이름을 새긴 3만3000원짜리 손목시계 100개를 돌려 반(反)개혁적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노 정부가 이른바 혁신사업을 한다며 쓴 809억 원의 국민 세금 가운데 수천만 원이 홍보용 손목시계 만드는 데 들어갔다고 한다. 지난해 법무부는 3840만 원을, 경찰청은 530만 원을 시계 구입하는 데 썼다. 혁신 동아리 및 직원 포상,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참석수당, 별정직 공무원 심사수당, 직원 승진 연수에도 혁신사업 예산이 집행됐다. 개혁이다 혁신이다 ‘무늬 좋은 소리’ 요란했지만 이 정부의 본질도 ‘홍보 시계’ 수준 아닌가.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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