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장일범]‘제2의 조수미’를 키우자

  • 입력 2006년 9월 6일 02시 58분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 오랜만에 조수미 콘서트를 봤다. 데뷔 무렵을 연상하게 하는 녹슬지 않은 예리한 목소리와 테크닉, 더 원숙해진 표현력과 여유로움으로 변함없이 청중을 사로잡았다. 이번 공연은 유럽 무대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DVD 제작을 위한 것.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오페라에 데뷔하고 몇 년 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가면무도회’에 출연해 우리들에게 벅찬 희열을 안겨 주었는데 벌써 20년 전의 일이었다니.

세계인들에게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있었다면 우리에겐 조수미가 있었다. 그만큼 조수미는 노래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파바로티는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있지만 조수미는 앞으로 20년은 더 무대에 설 수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청중은, 대중은 스타 성악가의 화려한 면만 본다. 그가 유럽 무대에서 오페라극장과 콘서트홀을 누비고 거장들과 함께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 시간들만을 말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조수미를 보면 난 오히려 그의 고독을 느낀다. 유럽 예술계의 치열한 경쟁과 험난한 파고 속에서 그가 보냈을 남모르는 고독의 시간을.

일반인에겐 한없이 화려하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예술계지만 실제는 치열한 경쟁 사회나 다름없다. 그 무대에서 한국 성악의 얼굴로 활약한 조수미. 그의 데뷔 20주년을 지켜보면서 세계무대에서 꿋꿋하게 활약하고 있는 우리 한국 음악가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떠올려 보게 됐다. 백건우, 정경화, 정명훈, 사라 장, 장한나, 홍혜경, 연광철 등.

우리는 좀 더 우리 아티스트들이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문화첨병으로 활약할 수 있게 체계적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문화콘텐츠가 국력인 오늘날 한 사람의 세계적인 예술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 사회는 비교적 뒤늦게 깨닫고 있는 듯하다.

유럽에서 각개전투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의 모습은 저변은 넓지 않지만 빼어난 몇몇 선수에게 의존하는 우리 국가대표 스포츠팀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중국과 일본이 유럽과 미국 예술계에 끼치는 국가적 입김은 이미 우리를 저만치 앞서 있다. 마치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 같은 영토 싸움에서처럼.

세계 음악계에서 우리의 몇몇 음악가가 빼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분전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오자와 세이지 같은 지휘자를 후원해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지휘자 등의 권좌에 오르게 했으며 빈 필 신년음악회에서도 지휘봉을 휘두르게 했다.

또 오자와나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쓰코 같은 음악가는 일본 문화의 첨병이자 상징이다. 세계 굴지의 음반회사들은 풍부한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앞날을 내다보고 중국계 아티스트들을 선발해 중국 시장을 겨냥한 음반들을 발표한 지 오래다.

지난주 호암아트홀에서는 조수미의 음악교사 초청 콘서트가 있었다. 공연 후 교사들과의 대화 시간에 조수미는 그동안의 아픔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한 사람이 잘된다고 그 사람을 샘내지 말고 서로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 제2의 조수미, 제2의 정명훈은 아직도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 명의 위대한 음악가, 정상의 예술가가 태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오스트리아는 올해 모차르트라는 작곡가, 예술가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특수를 누린 걸까? 뜨거운 경쟁 속의 국제 예술계에서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와 경쟁력을 동시에 높여 주는 세계적인 음악가를 이제 우리가 함께 빚어 내고 함께 밀어 주어야 한다.

장일범 음악평론가·안양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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