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아파트 改名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쉐르빌, ∼슈퍼빌, ∼스위트, ∼시티, ∼캐슬모닝, ∼파크. 요즘 새로 짓는 아파트에는 으레 이런 외국어가 붙는다. 래미안, 자이, 메르디앙처럼 어디서 왔는지 알기 어려운 이름도 많다. 그런 말이 들어가야 좋은 아파트라는 인상을 준다고 한다. ‘∼마을’같은 우리말이 붙으면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외국 대학가에서는 한국인 학생이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응시할 때 한국 주소를 ∼캐슬, ∼맨션으로 쓰면 합격 가능성이 높다는 우스갯소리도 떠돈다.

▷아파트 이름은 건설회사에는 브랜드가치, 입주자에게는 집값이 걸린 일이다. 따라서 건설사가 이름 짓기에 머리를 싸매고, 건축조합이 유명회사에 공사를 맡기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0년 이상 된 낡은 아파트도 외벽 도색과 리모델링을 해서 뜨는 브랜드로 갈아타려고 안달이다. 집값을 올리려는 욕심 때문이지만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서울 강남 등의 집값 폭등에 피해의식을 갖게 된 지역 주민들의 자구책이라는 측면도 있다.

▷건설사에는 요즘 새 브랜드로 이름을 바꿔 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들은 이를 거절하고 있다. 새 브랜드의 신뢰성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서울 강북의 L아파트는 최근 시공회사의 새 브랜드인 ×아파트로 무단 도색했다가 건설사의 요구로 원래대로 되돌려야 했다. 물론 외부 도색과 이름만 바꾸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할 구청과 건설사가 합의해 등기까지 마쳐야 법률상 ‘다른 아파트’가 된다.

▷건설부는 내외의 구조변경 없이 도색만 할 경우엔 개명(改名)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원상회복 명령과 최고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상표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한국주택협회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건설부는 특히 ‘집값 왜곡’을 내세우지만 이는 오히려 시장의 자유영역에 가깝다. 500만 원을 감수하고라도 개명을 강행할 경우 어떻게 막을 작정인가. 정부가 시민들의 삶에 끼어드는 것도 정도껏 해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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