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승호]사과와 아파트

  • 입력 2006년 9월 13일 20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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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무리한 부동산 정책을 ‘사과 수급조절’에 비유해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올 추석에 사과 값이 지나치게 비싸 차례상 차리기가 힘들어졌다고 하자. 정부는 사과 수입을 늘리고 사과의 대체재인 배나 감을 넉넉히 공급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수급불균형이 있고 기후변화도 문제라면 재배 면적을 늘리고 날씨에 강한 품종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시장 수요에 맞춘 공급 조절이다.

그런데 아주 기묘한 생각을 하는 당국자가 사과 구매 자격을 ‘차례를 지내는 장손(長孫)’으로 제한하는 제도를 만들었다고 하자. 또 일선 공무원들을 동원해 과수원의 모든 사과에 흠집을 내버렸다고 하자. 이렇게 해도 사과 값은 떨어진다. 어쨌거나 수요가 줄어든 데다 사과의 상품가치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지금까지 이런 수준의 ‘기묘한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8·31부동산대책 등에서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고 부동산 과세를 강화했다. 소득에 따라 대출액이 제한되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낮추고 미성년자나 배우자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등 부동산금융을 억제했다. 재건축을 못하게 막고 재건축조합원 지분거래를 금지하며 매입자에 대해 세무조사하는 제도는 유지 강화했다.

6억 원이래야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30평형대 아파트 가격이다. 그런데도 공시가격, 실거래가 등이 6억 원 넘는 주택에는 △1가구1주택에도 양도세 부과 △종합부동산세 중과 △역(逆)모기지론 가입자격 박탈 △매입 시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등 추가로 적용되는 규제가 10여 건이다. 전문가도 헷갈릴 만큼 규제가 복잡하니 한국은 ‘부동산 규제의 실험장’이라 불릴 만하다.

규제의 내용은 대부분 매입자격을 제한하거나, 거래비용을 높이고 부동산의 환금성(유동성)을 떨어뜨려 재화 자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방식이다. ‘부동산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특성이 있으므로 증권화를 통해 이를 개선하라’는 것이 교과서의 가르침이지만 우리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규제에만 치우칠 뿐 수급에 대한 근본 처방은 취약하다보니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강남의 집값은 잡지 못했다. 대신 애꿎은 지방 건설사들만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최근 수도권의 전세대란(大亂)도 근시안 정책에서 비롯됐다. 기반시설부담금제와 재건축규제로 신규 건설 물량이 줄어든 것이 파동의 주요 요인이다. 그런데도 건설교통부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최근 전세시장 불안은 이사철, 결혼시즌 등에 의한 일시적 요인”이라고 보고했다니 기막힌 일이다.

정부와 토지공사가 땅을 사들이기 위해 토지보상비로 3년간 38조 원을 지출했다. 수도권 편중 억제와 국토균형개발 목표 아래 행정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풀린 돈이다. 이 돈의 상당액이 다시 토지와 주택 구입에 사용되면서 주변 지역의 땅값 집값을 끌어올렸고 일부는 수도권으로 몰려 왔다. 각종 개발사업에 지출해야 할 토지보상비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남발하는 개발 계획이 땅값을 올려 토지보상비를 늘리고, 다시 풀린 토지보상비가 땅값을 뛰게 하는 악순환이다.

이렇듯 부동산과 관련해 터져 나오는 각종 파열음은 하나의 줄기로 꿰어지고 있다. 바로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난맥’이다. 어떤가. 이쯤 되면 ‘부동산 난정(亂政)’이라 할 수밖에 없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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