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속옷

  • 입력 2006년 9월 21일 02시 55분


몸에 착 달라붙는 진 바지 위로 속옷이 살짝 삐져나온 젊은 여성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눈요기로 힐끔거리는 이도 있을 터이고, 칠칠치 못하다고 혀를 차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워스트(worst)패션을 발표하는 미국의 패션TV 프로그램 ‘101 할리우드 워스트패션’이라면 “패션 크라임(crime·범죄)”이라고 외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입는 것도 유행이라고 한다.

▷요즘의 젊은 여성들은 브래지어 끈을 드러내는 것은 보통이고 속옷의 브랜드가 드러나 보이도록 치마와 바지를 일부러 내려 입기도 한다. 속옷의 색깔과 패션도 다양해지면서 전문매장도 많이 생겼다. 속옷의 개념이 ‘감추는 것’에서 이젠 ‘보여 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나 할까. 여성 골퍼들까지도 속옷에 신경을 쓴다는 얘기도 들린다. ‘속옷은 패션의 출발이자 완성’이라는 말이 광고 카피로만 들리지 않는다.

▷정진석 추기경이 그제 국회 가톨릭 신도·의원회 조찬 미사에서 속옷 얘기를 했다. 구약성서 레위기 6장 10절을 원용해 “성경 말씀에 단(壇) 위에 올라가는 사람은 속옷을 입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단 아래에 있는 사람과 달리 단 위에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지 단 아래에서 다 보인다. 여러분은 단 위에 있는 분들이니 단 아래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속옷을 챙겨 입듯이) 말을 품위 있게 하고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치인들에게 ‘말조심’을 당부한 것으로 이보다 더 적절한 예가 있을까 싶다. 영국 의회는 의원들이 회의석상에서 써서는 안 되는 표현을 정해 놓았다. ‘거짓말쟁이’ ‘비겁한 녀석’ ‘멍청이’ 같은 표현이 그런 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새로운 ‘금기 표현’이 추가되기도 한다. 쌍소리와 튀는 말을 예사로 아는 우리 정치인들에게 이 도덕률이 적용된다면 아예 입을 닫고 살아야 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말도 속옷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정치인들도 이제부턴 ‘말의 패션’에 많이 신경을 쓸 일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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