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안종석]‘마른 비만’ 방치하면 큰 병 부른다

  • 입력 2006년 9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마른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다. 얼마 전까지는 살집이 있고 풍채가 있어야 지위가 그럴듯하고 부자인 것처럼 인정받았다. 남성의 경우 마른 체형의 신랑감은 결혼 상대자로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결혼 당사자인 신부뿐만 아니라 신부의 부모는 마른 사람보다 어느 정도 살이 찐 신랑감에게 호감을 가졌다. 결혼 후에 아내는 남편이 살이 찌고 뱃살이 두둑해지는 것을 내조의 자랑으로 여기고 시집에서는 며느리가 살림을 잘하는지의 척도로 삼았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비만으로 인한 건강상 문제점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살찌는 것이 환영받지 못한다. 주위의 살찐 사람에게서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식사를 조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중년 남성일수록 뱃살이 늘어나는 데 특히 신경을 쓰는 듯하다. 어느 정도 나온 배를 가리키며 ‘인품’이라고 농담하던 모습과 대조적이다.

외형적으로 비만 체형인 사람은 살 빼기 노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말라 보이면서도 아랫배만 나온 마른 비만의 체형인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공중목욕탕에 가면 40대 이상의 남성은 대개 이런 체형인데 몸무게 자체는 비만으로 인정되지 않아 본인이 문제 삼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아랫배가 나온다고 생각할 뿐 마른 비만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마른 비만은 고칼로리 식생활과 운동 부족으로 인한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으로 복부 내장 사이에 지방이 축적되는 복부비만이다. 지방조직 증가와 근육량 감소로 인슐린과 같은 생체대사를 조절하는 호르몬 작용이 점차 무기력해져서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성 질환의 원인을 제공한다. 따라서 몸무게는 많이 나가지 않지만 아랫배가 나오는 마른 비만의 경우도 일반적인 비만과 마찬가지로 복부지방을 줄이기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고 음식을 조절하면서 질병의 위험인자를 항상 검사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위험에 대한 예방, 건강한 생활에 대한 추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대사성 질환을 사망의 핵심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비만은 이들 대사성 질환의 발병 요인이라서 소득과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전염병으로 선포될 정도다. 선진 국가가 비만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면서 관련 연구와 예방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도 선진국 진입에 따른 고열량 식생활과 안락한 생활방식으로 에너지 대사의 불균형에서 비롯되는 비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또 동아시아 민족의 공통적 특징인 당뇨 위험인자를 보유해 대사성 질환의 발병률이 상승하는 추세다.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전환하면서 질병을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하므로 삶의 질이 저하되고 경제적 손실이 커지는 등 대사성 질환의 문제점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도 소득 수준이 상승하고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단계에서 필히 직면할 대사성 질환의 문제점을 인식해 관련 연구개발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21세기의 전략과제로 추진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 연구개발사업의 중점 대상으로 정한 분야, 예를 들어 생명 연장을 위한 암, 뇌질환 등의 난치성 질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생애를 위해 대사성 질환의 연구개발에 눈을 돌릴 때이다. 국내 생명과학과 의학계의 과학적 수준이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대사성 질환에 관한 연구개발을 효율적으로 지원한다면 보건의료 산업의 개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종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대사체기능연구센터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