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아프리카 사람들마저 현대판 ‘노아의 방주’인 지하벙커로 몸을 숨기는 마당이니 우리 국민의 불안감은 말할 것도 없다. 생필품 사재기 같은 민감한 반응은 없었지만 북의 핵실험이 낳은 충격은 쉽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 같다. 성숙한 시민정신 덕분인지, 햇볕정책에 길든 안보 불감증 때문인지 겉으로만 평온할 뿐이다. 지하벙커까지 갖춘 서울 강남지역 최고급 빌라가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이고 보면 민초들의 마음을 알 만하지 않나.
▷재래식 전쟁의 경우에도 지하벙커는 유용한 전투지휘 또는 피신(避身)시설이다. 1961년 박정희 소장이 5·16 거사를 지휘했던 곳도 6관구 사령부(현재 서울 영등포구 문래근린공원) 지하벙커였고, 1979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 대통령 등을 살해한 뒤 미리 대기시켰던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직행한 곳도 육군본부(현재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지하벙커였다. 12·12쿠데타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이 몸을 피한 곳 역시 한미연합사 지하벙커였다.
▷정부 주요 기관과 군 지휘부는 핵 공격도 피할 수 있는 1등급 지하벙커를 갖고 있다고 한다. 1등급은 전국에 23곳뿐이어서 총 2만7000여 명, 즉 인구 1만 명 중에 6명만이 대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 국민이 피할 곳은 2, 3등급인 지하차도나 건물 지하, 지하철 역사밖에 없다.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죄 없는 국민만 방사능을 쬘 판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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